김지석 논설위원
유레카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이 대외정책에서 겪은 어려움의 대부분은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1989~93 재임) 행정부 때 잉태됐다고 미국 전략가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말한다.
우선 부시 행정부는 91년 말 소련 해체 이후 새로운 도전들이 고스란히 닥쳐오도록 그대로 방치했다. 부시 외교팀은 또 유고슬라비아 위기가 진전되는데도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아 91년 6월부터 10년 가까이 내전이 진행되도록 만들었다. 89년 2월 소련군이 거의 10년간의 점령을 끝내고 철수한 아프가니스탄도 미국 관심사에서 제외돼 2001년 9·11 테러의 씨앗이 됐다. 미국이 군사적으로 이긴 91년 1~2월 걸프전도 정치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이후 중동 평화의 열쇠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풀려고 노력하지 않은데다 미국이 중동인들에게 새로운 제국주의자로 비침으로써 반미 정서가 더 커졌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는 파키스탄·인도·북한의 핵 개발·확산에도 우선순위를 두지 않아 결국 위기를 심화시켰다.
부시는 외교·안보에 경험이 많은 대통령이었다. 그럼에도 많은 심각한 문제를 남긴 주된 이유는 격변기에 변화의 본질을 통찰하는 전략적 관점과 책임감이 부족했던 데 있다. 브레진스키는 이를 ‘부작위의 죄’라고 부른다. 그가 한 일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죄가 크다는 뜻이다. 실제 부시의 부정적 유산은 지금도 미국을 규정한다.
남북 관계가 지속적으로 나빠지고 있으나 이명박 정부는 사태를 풀려는 노력을 별로 하지 않는다.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는 무시 정책의 연장이다. 남쪽은 가만히 있는데 북쪽이 계속 문제를 만들지 않느냐는 정부 주장은 변명이 될지는 몰라도 책임을 덜어주지는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커질 수밖에 없는 부작위의 죄를 정부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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