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 에세이스트
야!한국사회
신월동 성당에서 한 손을 들어 보이던 이길준 의경의 사진을 보면 주책스럽게 눈물이 핑 돈다. 어떤 이들은 그의 행동을 철없고 알량한 영웅심리라고 비판하지만, 내 눈에 자꾸 맺히는 눈물은 어떤 영웅을 보는 감격의 눈물이 아니라 아직 철이 얼마든지 좀 없어도 될 풋풋한 청년, 동생 같은 아이가 사람 때리기 싫다고 저항하고, 또 끌려가고, ‘이 자식이 영웅 행세 한다’며 당할 일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저려서 나는 눈물이었다. 그는 항소심에서 오히려 처음보다 더 무거운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지금 안양교도소에 있다.
작년부터 시위에 나갈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아버지뻘이 되고도 남을 시위자의 목을 조르면서 웃던 전의경들의 사진을 봤을 땐 화가 치밀었고, 얘들도 이걸 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닌 걸 알면서도 그 거친 방패와 몽둥이질을 보면 어디에나 즐기는 놈들은 분명히 있다 싶어 마음이 독해졌다. 얘들이 적이 아닌 걸 알면서도, 어차피 정부가 힘없는 나라의 서자들끼리 충돌시키고 그 뒤에서 팔짱 끼고 편안하게 쳐다보는 거라는 걸 알면서도 걔들이 참 미웠다. 알 수 없는 구호를 외치면서 방패로 바닥을 자기들끼리 내리칠 때는 무서우면서도 화가 났고, 물대포로 쏴대고 있는 대로 욕을 하면서 방패로 밀어붙일 때는 보도블록 깨서 던진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그러던 지난 6월의 어느 하루였다.
언제나 경찰은 새벽에 ‘쳤다’. 곧 교통도 소통되어야 하고 시위대도 지쳐 수가 줄어들면, 우리는 언제나 그렇게 인도로 밀려났다. 악에 받쳐 앞에서 버티다가 사람들이 2열로 빼 줘서 버텼고, 선무방송은 계속해서 해산을 종용했다. 교복 입은 애들이 다 똑같듯 헬멧을 쓴 감색 옷의 청년들은 마치 <스타워즈>의 스톰 트루퍼처럼 다 똑같아 보이고 똑같이 미웠다. 그때 앞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인도로 올라가세요. … 제발.”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보니 똑같은 스톰 트루퍼 중에서도 욕 말고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다. “누나, 올라가세요. … 네?”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여기서 올라가면 왠지 ‘가오’가 상할 것 같은 기분에 버티고 있었는데,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로 복잡해졌다. “저기요…” “네.” 말은 꺼냈는데, 도무지 할 말이 없었다. “다치지 마세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인도로 올라섰고, 도로는 차츰 늘 그렇듯 정리되었고, 그는 계속해서 고개를 숙인 채였다. 새벽 빛은 밝아 왔지만 돌아오는 길 마음은 내내 어두웠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정부가 참으로 죄가 많다고. 여기 서 있는 이 소년 같은 청년들의 마음의 흠집은 누가 다 일일이 닦아 주나, 여기서 상처받는 소년들의 마음은 누가 알아주나. 이 죄를 어떻게 다 갚으려고 이러나.
다음 날이던가 그다음 날이던가, 새문안교회 앞에서 대치중일 때 버스 위에 올라가 있던 전경들이 보였다. “밥 먹었어요?” “네-” 하고 돌아오는 그 목소리는 해맑았다. 주머니에 넣고 있던 초코바를 힘껏 던졌다. “이거 드세요!” 아웅다웅하던 소년들은 장난스럽게 더 주세요, 하고 외쳤다. “전역하면 사 줄게요!”
진심이었다. 초코바 먹던 소년들, 전역하면 연락하시라. 그리고 제발 아무 일 없이 전역하길, 때리지도 맞지도 말고, 이루어질 수 없겠지만 …. 무력한 누나는, 그냥 마음이 아파서 그런 생각만 했다. 얘들의 이 상처는, 이 슬픔은, 도대체 누가 갚아 줄 것이며 누가 닦아 줄 것인가.
김현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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