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우 기자
유레카
‘종교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의 올해 수상자로 프랑스 물리학자 베르나르 데스파냐(87)가 선정됐다. 개인한테 해마다 주는 상으로 치면, 세계 최고 상금을 주는 상이다. 올해 상금은 100만파운드(약 20억원). 인간 정신의 지평을 넓힌 업적에 주는 상이 노벨상에 없다는 데 문제를 제기하며 만든 상이라 하니, 노벨상보다 많은 상금을 주는 전통은 템플턴상의 자존심을 보여준다. 영국 기업인 존 템플턴이 1972년 창설한 템플턴재단이 주는 이 상의 역대 수상자들엔 종교인이 다수이지만 과학자도 여럿 있다.
템플턴재단 자료를 보면, 올해 수상자 데스파냐는 요즘 떠오르는 양자정보 연구에 밑거름을 마련한 이름난 양자역학자다. 또한, 미시세계에 드러나는 양자 상태의 불확실성이라는 과학 화두를 넘어, ‘실재는 과연 다 파악할 수 있는가’라는 철학 화두에 매달려온 과학철학자다. 필생의 물음은 1994년 “베일에 싸인 실재”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우리가 보며 아는 모든 것은 현상이며 그 이면엔 ‘무언가 분명한 실재’가 가려져 있다는 뜻이다. 알 수 없는 본체가 있고 우리는 본체의 현상만을 본다는 칸트 철학과도 비슷하다. 철학을 사유가 아닌 과학으로 입증하려 애썼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인간의 ‘생각 그릇’을 뛰어넘어 저 압도하는 양자와 우주의 세계는 어떠한 것인지, 알 듯 모를 듯 난해한 노학자의 말로 들어보자. “과학은 진실한 지식을 제공한다”고 그는 믿는다. 그렇지만 과학조차도 확실하지 않은 현상만을 볼 뿐이란다. 그래서 과학이론은 실험으로 뒤집히곤 한다. 예술도, 종교도 실재의 일부를 들춰본다. 그렇지만 그는 이런 과학철학이 특정 종교 교리를 정당화하는 데 쓰여선 안 된다고 경고한다. 또 “(과학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시로 채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호기심은 더 커진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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