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정 르포작가
야!한국사회
지난 토요일 밤, 서울에 비가 왔다. 비보다 먼저 ‘용산’은 눈물로 젖었다. 불에 타 죽은 여섯 원혼을 달래는 ‘진오귀굿’(황해도굿보존회 ‘한뜻계’의 공연)이 열린 자리. 만신들과 유가족들, 그 자리에 함께한 시민들이 울었다. 낮 12시에 시작한 굿은 중간에 추모 문화제를 한 뒤 다시 이어졌다. 죽이지 않고 살리려고 했으면, 내치지 않고 구하려고 했으면 …, 산 목숨을 잃은 넋들이 어찌 억울하고 분하지 않겠는가. 굿을 하는 동안 만신들이 쓰러지고, 가족들은 까무러치곤 했다. 아무리 통곡한들 원통이 풀릴까만, 추모하려 모여도 불법이라며 광장을 막고 잡아들이는 정부에, 사과는커녕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을 폭행하고 영정을 깨부수며 가난한 국민 따위는 없는 셈 치는 이 정부에 내내 상처 입은 마음들이 만신들한테서 위로받기를 나는 바랐다. 철거를 앞둔 텅 빈 집에서 혼자 학교를 다니는 고등학생 아들을 달래주는 만신들이 고마웠다. 죽은 남편들이 “명예회복이 될 때까지 절대로 시간과 세월에 굴하지 않겠다”는 아내들을 꼭 안고 함께 울어주는 만신들이 살아 있는 바리데기처럼 보였다. 빗방울은 무장 굵어지고 굿은 예정한 시간을 넘겨 밤 9시쯤에야 끝났다.
살인 진압이었는데도 모든 죄는 철거민들에게 씌워진 채 시간은 멈춘 걸까. 아니, 그날을 잊지 않는 한 진실은 묻히지 않을 게다. 굿이 죽은 자와 남은 자들을 보듬은 것처럼, 화가들은 그림으로, 가수들은 노래로, 시인들은 시로, 배우들은 연극으로, 작가들은 곧 나올 철거민들의 삶을 기록한 <여기 사람이 있다>라는 책으로 그렇게 ‘용산’으로 지금 움직인다. 진상이 밝혀지고 책임자가 처벌될 때까지 유가족·시민들과 함께하려고.
유가족과 시민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유가족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왜’가 유독 많다. “망루에서 내려와 다친 사람을 깨워 살린 사람들이 왜 불타는 망루로 갔다고 하는가. 불이 활활 타는 망루에서 죽었다고 경찰이 발표했는데 유품 중에 왜 라이터 두 개는 안 탔는가. 왜 장갑은 안 탔는가. 자동차 열쇠 손잡이 플라스틱 부분은 왜 안 탔는가. 왜 용산경찰서와 구청에서 온 공문은 전혀 타지 않았는가. 왜 그렇게 빨리 부검을 했나. 한 사람을 부검하려면 두 시간도 모자란다는데 어떻게 다섯 사람을 두 시간 만에 했나. 왜 모든 시신을 완전히 난도질해 놨나. 경찰은 왜 추모제에 간 유가족을 그렇게 때리는가. 그건 왜 보도가 안 되는가. 왜 경찰은 병원을 오가는 유가족을 막나. 왜 경찰도 정부도 진상규명하려는 유가족 마음을 못 헤아리나. 우리가 왜 불법인가.”
저 ‘왜?’에 답하지 않고 정부는 힘없는 자를 향해 불법·폭력이라는 말을 자꾸 한다. 추모제도 불법, 참석하는 이도 불법, 깃발을 달 깃대도 불법 무기라고 사복경찰이 길을 막고 협박한다. ‘불법’이라는 단정 아래 불법 아닌 게 없는 세상이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불법·폭력을 되뇌는 정부가 의심스럽다. 참사 건물 3층 벽 간판에는 ‘세상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고 적혀 있다. 세상을 ‘사는 곳이 아니라 사는 것’으로 만드는 자들이 실상 불법과 폭력 그 자체가 아닐까. 용산 4구역 철거민 한 여성이 말한 것처럼 “전경들이 왜 여기서 24시간 지키고 있겠어요. 두려워 그러는 거 아니에요? 무섭고 겁나고 두려우니까. 자기들이 지은 죄가 있으니까.” 그런 건 아닐까. 얼마 전 아랫녘 예순 넘은 여성 농민한테서 얻어온 말인데 이 정부가 알아들으려나. “남 죽이고 내가 사는 방법은 없다. 남을 살리면 나도 산다. 남을 죽이려고 하면 자기가 죽는다.”
박수정 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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