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김빠진 맥주? 치명적 독주! / 정정훈

등록 2009-03-25 18:49수정 2009-03-25 20:19

정정훈 변호사
정정훈 변호사
야!한국사회
미궁이다. 애초에 징계위원회가 아닌 윤리위원회 회부 결정 자체가 어정쩡한 절충이었다. 대법관 징계의 부담을 덜고, 자진사퇴 기회를 열어주려는 궁여지책으로 여겼지만, 그게 아닌 모양이다. 신영철 대법관은 아무 말이 없고, 여전히 ‘판결로만’ 말하고 있다.

최근 정진경 부장판사가 법원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동아일보>는 “법관 사퇴압박, 중대한 ‘법관독립’ 침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 글을 인용하며, 진상조사 결정 이후의 프레임을 주도하고 있다. 정 판사의 글이 동아일보와 관점을 같이하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어찌되었든 나는 이 글에서 사건의 근본 문제를 차분히 되짚는 법관의 고심을 읽을 수 있었다. 진지한 논의의 매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간단한 의견을 밝힌다.

우선 재판권과 사법행정이 정확히 양분되기 어렵다는 전제에는 조심스럽게 동의를 표한다. ‘법관의 독립’이라는 명분으로 국민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되는 경우에는 절차 진행에 관한 의견을 통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대법원에서 3년 5개월간 지연된 재판이 그런 사례다. 그러나 구체적인 각론이 문제다. 신영철 대법관의 신속한 재판 주문은 단순히 재판 절차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자체가 유무죄 판단과 양형의 문제다. 해석으로는 실정법의 명백한 한계를 넘어설 수 없는 법관들에게 법률의 위헌 여부가 문제되는 상황에서 신속한 재판을 주문하는 것은 유죄를 선고하라는 것과 다름없는 것 아닌가?

위헌제청을 하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 “실정법에 위반된 것이라면 유죄를 선고하면 그뿐”이지 “과거의 예가 관행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의견에도 동의할 수 없다. 이 문제는 법관의 독립, 양심에 따른 판단이라는 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위헌 여부에 대한 판단이 불명확하거나 설령 법관 개인이 합헌 의견일지라도,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려 신중하게 판결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그것이 ‘법관의 독립’을 보장한 근본 이유인 국민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요청이다. 정 판사는 시기를 놓친 형사처벌은 “김빠진 맥주”처럼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부당한 법률을 적용한 형사처벌은 사법 신뢰를 파괴하는 “치명적 독주(毒酒)”다. 일단 ‘독배’를 건네고, 2심 3심에서 교정할 기회가 부여될 수 있다는 것은 사법행정의 편의적 시각이다. 당사자는 헌법재판소의 선고 예정을 이유로 불복할 것이고, 신속한 재판과 처벌의 확정이라는 목적도 달성할 수 없다.

다음으로 법관들의 이의 제기 방법에 관한 문제의식도 동의하기 어렵다. 정 판사는 “판사들이 법원 내부의 절차를 생략한 채 외부의 언론기관에 제보하여 여론의 힘에 의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온당한 태도가 아니”라고 한다. “사법관료화와 의사소통의 부재”를 문제의 핵심으로 지적하면서도, 정작 법원과 국민의 소통이라는 중요한 관점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쉽다.

이는 ‘불온서적’ 지정에 헌법소원을 제기한 군법무관을 파면한 국방부와 동일한 독단에 빠지는 것이다. 사법의 독립, 군대의 권위가 폐쇄적인 내부회로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독단의 거울’은 깨져야 한다. 특히 이번 사건은 결코 사법부 내부의 문제가 아니었다. 국민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침해라는 중대한 문제였고, 법원 내부에서 낮게 속삭이며 미봉할 문제가 아니다.

미봉이고 절충이었지만, 일단 회부된 이상 윤리위원회의 결정은 빠를수록 좋다. 시기를 놓친 결정은 국민에게는 “김빠진 맥주”요, 법원에는 “치명적인 독주”가 될 것이다.


정정훈 변호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체포 말고 구속” 윤석열 역제안의 이유 1.

“체포 말고 구속” 윤석열 역제안의 이유

트럼프처럼 복귀하겠다는 윤석열의 망상 2.

트럼프처럼 복귀하겠다는 윤석열의 망상

[사설] ‘특검 찬성’ 의원 겁박 권성동, ‘백골단 비호’ 김민전 3.

[사설] ‘특검 찬성’ 의원 겁박 권성동, ‘백골단 비호’ 김민전

성소수자 청소년을 구한 트랜스여성 4.

성소수자 청소년을 구한 트랜스여성

지리산에서…어제 만난 약초꾼, 오늘 만난 스님 5.

지리산에서…어제 만난 약초꾼, 오늘 만난 스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