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기자
유레카
외환위기 때인 1998년 9월 당시 주택은행(지금은 국민은행과 합병) 행장으로 취임한 김정태씨는 “재임 기간 중 월급을 1원씩만 받겠다”고 선언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은행을 살리기 위한 최고경영자의 용단으로 평가됐다.
증권사 사장 출신인 그는 역시 고수였다. 그는 월급 대신 이름도 생소하던 스톡옵션(주식 매입 선택권)을 받겠다고 했다. 주택은행은 그해 10월 연 주주총회에서 그에게 3년 뒤부터 액면가에 최대 40만주를 살 수 있는 스톡옵션을 줬다. 취임 때 주당 3550원이던 주가는 주식시장 회복과 함께 급등했다. 스톡옵션 가치는 한 달 만에 15억원이 됐고, 4년 뒤 행사차익은 134억원에 이르렀다.
출렁거림이 매우 큰 우리 주식시장에서 스톡옵션은 경영진의 능력이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되기 어렵다. 코스피지수는 1998년 5~10월의 300선에서 1년 만에 1000선으로, 2000년 9월~2001년 10월 500선에서 2002년 3월 900선으로 뛰어올랐다. 2003년 3월~4월 500대에서 수직상승해 2007년 10월에는 2000을 돌파하기도 했다. 이렇게 진폭이 큰 시장에서 스톡옵션은 당첨 가능성이 매우 높은 복권이나 다름없다.
최근 은행들이 최고경영자와 임원들에게 스톡옵션을 줬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대부분 철회했다. 외화 유동성 공급과 부실채권 정리, 자본 확충 과정에서 정부 지원을 받는 은행들의 스톡옵션은 보통 사람의 눈에도 도덕적 해이라는 게 잘 보였기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하지만 정부가 수조원의 재정을 사회기반시설(SOC) 확충에 쏟아부어 일감을 만들어주고, 은행과 공공기관을 총동원해 지원하면서 조장하고 있는 건설회사들의 도덕적 해이에 견주면 은행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는 새발의 피다. 이번에도 비싼 값을 치르고서야 깨달을 것인가?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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