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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고난 주간에 아저씨들 생각 / 김현진

등록 2009-04-06 21:32수정 2009-04-06 21:34

김현진 에세이스트
김현진 에세이스트
야!한국사회
지난 일 년 엠비(MB)정부 치하에서 오른 건 사교육비와 소주 소비량밖에 없다고 해서 혼자 깔깔 웃었다. 허탈한 웃음이었다. 자식이 없으니 사교육비에 보탠 건 없고 소주 소비량 증가에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확실히 공헌했다. 그러면서 술 취해서 노래를 불러 봤자 달콤한 노래가 입에 붙을 리 없고, ‘철의 노동자’ 같은 거나 흥얼흥얼 혼자 개사하고 있다. 단 하루를 살아도, 별일 없이 살고 싶다 … 사는 게 몹시 흉흉하다 보니, 로또 맞고 싶은 것도 아니고 고작 별일 없이 사는 게 이토록 큰 꿈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 꿈 역시 그리 쉽게 이루어질 리 없다.

도덕성 논란으로 8개월 만에 보건복지부 장관에서 낙마했던 김성이 전 장관이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장으로 임명된다고 한다. 그는 익히 알려진 대로 30개월이 안 된 소를 먹는다니 상상도 못 했다, 소도 생명인데 10년은 살아야 하지 않느냐는 감성 발언에 이어 우리나라 복지정책의 실패는 신앙심이 부족한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휘자 정명훈은 국립오페라합창단 해체 반대를 위해 도움을 얻고자 찾아온 이들에게 ‘기도하라’고 답했다. 추부길 목사는 촛불 시위대를 가리켜 사탄의 무리라고 하더니 박연차 리스트에 올라 잡혀갔다. 이명박 대통령이 시장 시절부터 서울을 하나님께 통 크게 봉헌한 사실은 유명하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안전지대를 찾아 미친 듯이 인천으로 피난 갔던 기억이 난다. 넓고 휑했던 공항 벤치에 드러누워 철딱서니 없는 머리로 열심히 고민해 봤지만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이를 먹으면 철도 날 줄 알았고 요령도 좀 생길 줄 알았고 그러면서 세상 살기도 수월해질 줄 알았건만 그때보다 오히려 지금이 더 힘든 것 같다. 시절이 수상한 건지 내가 나약한 건지 살아서 버티는 것만 해도 자꾸 슬픔만 커진다. 지난 3일, 모터쇼가 열리는 킨텍스에는 ‘피의 모닝’이라 불리는 모닝을 생산하는 동희오토 금속노동자들이 먼 길을 올라와 ‘저 전시장 안의 삐까뻔쩍한 차들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것이다’라며 선지를 던지고 순식간에 붙잡혀 갔다. 그러고 보니 아, 고난 주간이다. 한 주만 있으면 교회마다 부활절 칸타타가 울려 퍼지겠지만 동희오토의 고난 주간은 언제 끝난단 말인가. 투쟁 4년째의 봄을 맞이한 기륭전자 분회에 진짜 봄은 언제 온단 말인가. 콜트-콜텍 노조에는? 강남성모병원 해고노동자들에게는? 재능교육에는? 본의 아니게 초짜 투쟁가가 되어 버린 국립오페라합창단 노조에는?

이 가냘픈 연대와 달리 돈 있는 아저씨들은 뭔가 서로 단단히 묶인 것 같아 참 부럽다. 그런데 그게 사랑의 띠라기보다는 하나님이라는 대빵 형님 아래 결코 실패할 일 없이 든든히 서로 믿고 있는 ‘조직’ 같아 가끔 무섭다. 그들은 ‘기도하겠다’고 말하지 않고 ‘내 기도가 부족한 탓’이라고 하지 않았다. 다 너희가 기도해야 하고 너희 신앙심이 부족한 탓이라는 이 근사한 아저씨들과 고작 30대 초반에 죽어 버린 ‘정치범’은 무슨 상관이 있을까. 갑갑하니까 그냥 예수님이 와서 한번 물어봐 주셨으면 좋겠다. 단 멋있고 폼 나고 성스러운 모습으로 오지 마시고 서른 갓 넘은 새파란 나이에 서슬만 시퍼렇고 배운 거 없고 돈도 없고 잘생기지도 않고 키가 훤칠하지도 않고 노동자 아버지와 소문 안 좋을 뻔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죽도록 일만 해서 손에 못이 박인 경공업 노동자, 얼굴은 새카만데다 무화과나무 열매 하나 먹고 싶을 때 못 먹어서 마른 얼굴로 나타나서 한번 물어봐 주셨으면 좋겠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적어도 기도하란 말은 못 하겠지.

김현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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