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야!한국사회
2001년 여름, 나는 총리실에 근무하고 있었다. 현 정부에서 ‘저탄소 녹색성장’이라고 얘기하는 바로 그 기후변화협약을 2차 종합대책이라는 형태로 재정비하고, 기업이나 민간이나 어차피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일들을 하지는 않을 것이 뻔하지만, 그래도 그들을 조금이라도 더 지구적 생태의 문제로 끌어들이기 위한 정책 틀을 만드는 것이 내가 하던 일이었다. 그 여름, 만약 노무현 후보가 대선 후보가 되면 나도 그를 위해서 뭔가 하겠다고 작은 결심을 했다. 가을과 겨울 사이, 내가 할 수 있는 몇 가지 일들을 그를 위해서 조금은 했고, 그 대통령 선거에 나는 노무현이라는 한 사나이를 위해서 투표를 하였다. 물론 나는 내 주변 인사들에게 꽤 많은 욕을 먹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시기에 나는 인간 노무현에게 희망을 걸고 싶었다.
그 뒤에는 실망스러운 일이 많았다. 최소한 노무현이라면 새만금 정도는 해결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클러스터’와 ‘균형발전’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을 다시 토건국가로 강하게 끌고 나갔고, 비정규직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면서 한국의 종신고용 체계를 아무런 선언도 없이 자연스럽게 해체시켰다. 한 축으로는 토건 현상을 강화시키면서, 또 한 축으로는 신자유주의와 그에 따른 노동 유연화를 끌고 나갔다. 그리고 이라크 파병을 통해서 ‘군사 한국’의 틀도 재마련하였고, 임기 말기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강행으로 그야말로 좌파와 같이 정책을 논의하기 위한 최소한의 공동 입지도 없애고, 대선과 함께 떠나갔다.
그가 좌파였다면, ‘게으른 좌파’라고 해야 할 것 같고, 그가 우파라면 ‘좌파 동정적 우파’라고 일러야 할 것 같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는 어쩌면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니고, 그야말로 현실적 개혁 정치인 정도로 불러주는 게 옳을 것 같다. 그는 좌파의 지지를 받았고, 심정적으로는 우파였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어정쩡한 입장에 다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개혁’이라는 마법의 지팡이 같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도 외로웠을 것 같다. 신자유주의로 질주하는 그에게 좌파는 지지를 보낼 수 없었고, 그가 ‘대연정’이라는 이름으로 “도와달라”고 말했던 우파들에게는 철저하게 무시를 받았다. 그가 말한 ‘도덕성’은 그런 외로움의 표현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좌파도 우파도 아닌 가련한 인간 노무현은 도덕성이라는 말로, 스스로가 서 있을 수 있는 최소한의 디딤돌 아니면 인간적 아련함, 그런 것들을 도덕성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수천억대의 돈을 받았던 노태우 시절과 비교하면, 인간 노무현과 그의 식솔이 받은 돈은 큰돈은 아니다. 그러나 워낙 그가 도덕성을 좌파와 우파 사이의 디딤돌로 내세웠기에, 그가 이제 서 있을 수 있는 공간은 없어 보인다. 그와 함께 ‘개혁’이라는 어정쩡한 프로그램도 같이 역사의 뒤안길로 가게 될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인간 노무현을 위해서 연서 한 장은 쓰고 싶다. 그가 조금만 더 경제가 인간의 삶이라고 이해했다면, 지금과 같이 우리가 겪는 외로움은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가 대선 후보로 서 있던 순간, 많은 사람들이 같이 꿈을 꾸기는 했다. 청년 실업, 지방 경제 위기, 비정규직, 이런 문제들 위에 서 있는 한국을 뒤로하고, 인간 노무현은 사라진다. 너무 잘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던 사나이, 그의 외로운 삶을 위해 작은 연서를 … (다음 차례는?)
우석훈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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