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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학살, 엘도라도 카라자스와 용산 / 박수정

등록 2009-04-13 22:27

박수정 르포작가
박수정 르포작가
야!한국사회
1996년 4월17일, 브라질 북부 엘도라도 카라자스에서 19명이 죽었다. “토지개혁을 위해 걷기”에 나선 ‘땅없는 농업노동자 운동’(MST) 회원들이다. 땅도 집도 없는 이들이 경작하지 않는 마카세이라 농장을 점거한 뒤, 토지 수용을 요구하며 주도인 벨렝을 향해 걸었다. 아이와 어른, 여성과 남성 3500명이 살 땅이었다. ‘토지개혁과 이주 국가협회’가 주정부와 교섭하는 데 힘을 실으려 1500명이 길을 떠났다. 걸으며 호소하는 일, 그게 전부였다. 농장에서 출발해 8일째 되는 날, 서쪽과 북쪽에서 포위해 온 헌병대는 손에 쥔 건 깃발뿐인 이들에게 총을 쐈다. ‘엘도라도 카라자스 학살.’ 해마다 그날이면 사람들은 그 자리 찻길을 19분 동안 점거한다. 한 가수는 “엘도라도 카라자스, 그이들은 죽지 않는다/ 싸우는 민중들을 키우는 씨앗으로 다시 온다/ … 누가 폭력을 기억하는가/ … 죽어간 카라자스 벗들을 위해 정의를 원한다/ … 학살을 명령한 자를 감옥으로!/ … 우리는 그만두지 않는다/ 민중은 하나 된 목소리를 이루기 위해 계속 만날 것이다/ 땅을 뚫고 열아홉 꽃이 핀다”고 노래했다.

지난 토요일은 ‘빈곤확산 개발반대 시민행동의 날’이었다. 서울 탑골공원 앞길에 ‘화곡·신곡·단대·지금·안양관양·안양덕촌·장기·시흥죽율·상도·왕십리·신원꽃마을·정금마을’ 등 서울·경기 철거지역 주민들이 모였다. 마을 이름과 ‘행복권·주거권·생존권’을 새긴 깃발을 든 이도 있다. 동네에서 흔히 만나는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개발이익 지역사회 환원 개발사업 공공성 강화, 무분별한 개발 중단 순환식 개발 시행, 강제철거 중단 용역폭력 척결, 철거민 탄압 중단 용산4구역 재개발 중단, 살인진압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브라질에서 깃발을 들고 걸었던 이들이 떠올랐다. 물론 한국 철거민들은 그이들처럼 좀더 근본적인 요구를 하진 않는다. 이 최소 요구에 사회가 귀 기울이지 않으면 ‘용산’은 반복되리라.

카라자스에서는 총으로 학살했지만, 2009년 ‘용산’은 학살이 총으로만, 총 쥔 자만 저지르는 게 아니란 걸 보여준다. ‘땅·집·돈’이 없는 자를 금 밖으로 몰고, “마을 공동체를 파괴”하며, 철거용역이 주민들을 일상으로 모멸하는 개발‘사업’ 과정이 학살이다. 그 ‘사업’은 대화 노력 없이 경찰력을 동원해 망루 아래위를 포위해 사람을 죽였다. 거기서 참회하고 멈추면 좋으련만, ‘가진 자’를 대변하는 입들은 망루에 올라 호소하려는 게 전부인 이들을 ‘테러리스트’로 몰고 검찰은 진실을 감춰, 이에 동조한다. 용산구청은 화가들이 그린 추모그림·초상화·상징탑을 훼손·강탈하고, 재개발조합은 업무방해로 유가족과 철거민에게 8억 넘는 돈을 손해배상하라고 청구소송을 내, 한길을 간다. 철거대책위를 만들어 생존과 주거라는 소박하고도 절실한 요구를 하는 이들에게 경찰은, 각 회원 집과 대책위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면서 “회원 200여명을 구속시킬 예정으로 수사하고 있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학살 끄트머리 임무를 지나치게 해낸다.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을 그렇게 꼭 저 아래로 떠밀어야 하는지 보고 듣기 민망하다. 망루 안 ‘사람’을 무시한 날, 이미 우리 모두 자신 안 ‘사람’을 잃은 걸까.

저 노래에서 카라자스를 용산으로 바꿔보자. 혹시 ‘민중’이 불편한가? 학살이 일상이고 일상이 학살인 자본주의사회에서 ‘나’는 민중이 아닌가? 19명이 죽은 사건은 공식 이름이 ‘엘도라도 카라자스 학살’이다. 6명이 죽은 사건의 공식 이름은, ‘용산 학살’이다.

박수정 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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