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현호 논설위원
유레카
알렉산더 대왕의 육촌인 에피루스의 왕 피로스는 타고난 전사였다. 기원전 280년 피로스는 로마 공격에 나섰다. 헤라클레아 전투에 이어 이듬해 아스쿨룸 전투에서 로마군을 궤멸시켰지만, 그 역시 큰 피해를 입었다. 2만5천여 병력의 3분의 1 이상, 탱크처럼 활용하던 코끼리와 주요 막료·지휘관 상당수를 잃었다. 로마군은 현지에서 병력을 충원할 수 있었지만, 그로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이런 승리를 한 번 더 하면 나는 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피로스는 4년 뒤 로마군과 다시 격돌해 결국 패배했다.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는 이처럼 큰 희생을 치르고 얻는, 상처뿐인 승리를 뜻하는 관용어다. 비슷한 말로 ‘카드모스의 승리’(Cadmean victory)가 있다. 이긴 뒤에 오히려 더 큰 재난이나 새로운 시련을 초래하는 형국을 뜻한다. 테베 왕국을 세운 카드모스가 자신의 부하들을 죽인 큰 뱀을 처치했으나, 그 뱀이 군신 아레스에게 바쳐진 것인 탓에 두 딸과 손자들이 다 불행하게 죽는 등 시련을 겪은 일에서 비롯됐다.
이를 딴 ‘부시의 승리’란 풍자도 있다. 아들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 작전처럼 이득보다 손실이 더 많은 군사적 승리를 그리 부르자는 것이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의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을 몰아내느라 오사마 빈라덴을 무장시키고,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사담 후세인을 지원하는 등 당장의 목표에 눈멀어 장래의 화근을 키운 일을 꼬집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 4·29 국회의원 재선거는 성적으로만 보면 정동영 전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승자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그는 그 과정에서 전국적 정치지도자의 풍모는 다 잃었다. 당에 맞서 싸운 배신자라는 비난도 받는다. 눈앞의 실리를 좇느라 대의와 명분은 버린 끝에 얻은 승리를 뭐라 부를까.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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