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기자
유레카
훌륭한 업적을 남겨 후세에 귀감이 되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는 위인전으로 남는다. 대체로 위인들의 사사로운 잘못은 감추고 좋은 일만 싣는다. 반면 손가락질받을 만한 일을 벌인 이들에 대한 후세의 기억은 시간이 흐르다 보면 한두 가지 우스꽝스런 장면이나 발언으로만 남게 된다. 이를테면, 필리핀의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부인 이멜다는 신발장에 가득 차 있던 하이힐과 함게 기억된다. 이라크 기자가 던진 신발을 피하던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모습은 그가 죽은 뒤에도 오래도록 그를 따라다닐 것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 결국 사임하기로 결정한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벽에 걸려 있는 역대 대통령들의 초상화를 보다가 존 케네디 앞에 섰을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당신을 통해서는 미래를 보고, 나를 통해서는 과거를 본다.” 그 순간 닉슨의 심정이 어땠을지 헤아려보면, 요즘 뇌물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법적 책임과 도덕적 책임을 구분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의 부인이 돈을 받은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으로 노 전 대통령이 뇌물죄의 책임을 져야 하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검찰도 딱 부러진 증거를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 처지에서 보면, 전직 대통령에 대한 형사처분이 거론되는 상황 자체가 불행이다. 그런 일이 다시 없게 할 방법은 없을까?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란 책에서 “증권거래소에서 일할 사람은 고대 그리스 시 시험에 통과해야 하고, 정치가들은 반드시 역사와 현대소설에서 상당한 지식을 갖추도록 돼 있다면 세상은 얼마나 유쾌할 것인가”라고 쓴 적이 있다.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얘기지만, 우리나라의 ‘정치인 시험’에 뭔가 큰 허점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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