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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한예종 사태, 예술가의 의무는? / 김현진

등록 2009-06-08 21:29

김현진 에세이스트
김현진 에세이스트
‘한예종 사태’ 때문에 시끄럽다. 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예술사 출신이고, 지금은 필요한 과가 아니니 없애버리자고 저들이 소리 높여 주장하는 과 중 하나인 서사창작과 전문사 과정 휴학중이다. 좌파 지식인을 양성하고 실기 중심의 학교에 이론과가 왜 필요하냐며 시끄러운 와중에 황지우 총장은 총장직을 사퇴했지만 교수직까지 박탈한다 하여 몹시 시끄럽다. 학우들은 이 사태에 분개하고 있지만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그냥 축 가라앉는다. 학교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미 한번 당해본 적이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에 무슨 놈의 대학교가 취업률이 2%냐며 쓸데없는 학교다! 하는 식으로 국회에 한국예술종합학교 폐교안이 상정된 적이 있다.

그때 새파란 나이에 몹시 충격을 받았다. 아, 사회란 곳은 사실 별로 예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구나, 하는 충격이었다. 승자독식주의가 펄펄 나는 이 사회에서, 사람들이 예술을 옹호해주는 한계는 예술을 애호하는 기분을 내게 해주는 정도지 진중권처럼 거슬릴 만큼 똑똑한 사람이 왔다갔다하면 안 되는 거였다. 실기 중심, 그 말은 너네는 한국예술종합 ‘학원’이잖니, 하는 말과 똑같았다. 똑똑한 체하지 말고 춤추고 노래나 불러라, 하는 얘기였다. 그때의 충격이 워낙 커서 어찌어찌 대학원 과정에 진학하면서도 고민은 언제나 동일했다. 어떻게 하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예술을 할 수 있을까. 그건 사회를 대단히 생각해서가 아니라 20대 초반에 겪었던 그 ‘잉여인간’ 취급이 몹시 싫었기 때문이었다. 폐교니 축소니 외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그저 잉여인간에 불과했다.

이 사태를 보면서도 그냥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아 버리는 또다른 이유는, 이것이 틀림없이 또 일어날 일이기 때문이다. 황지우 총장이 떠난 자리에 도대체 누가 들어앉을지 상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하다. 유인촌 장관은 문화부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는 학우들에게 가서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하고, 학부모에게는 세뇌되었다고 말하고 자전거를 타고 휙 지나간다. 이런 일은 틀림없이 또 일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뼈를 깎는 심정으로 각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누가? 이명박이? 유인촌이? 아니다. 지금 각성해야 할 것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적을 둔 바로 우리들이다. 물론 힘 있는 선배도 없고 학생 수도 턱없이 적고 그래서 힘이 없다는 것도 다 맞는 이야기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각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학우들이 보내온 행동지침에서, 총력으로 시민단체 등과 ‘연대’할 것, 이라는 구절을 보고 나는 피할 수 없이 작년 촛불 정국을 떠올렸다. 학교 단위로 참여하지 않는다고 격분하는 학우들에게 어떤 학우들은 답했다, 개인의 정치적 의사는 존중되어야 한다고. 물론 그 말은 옳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말하는 이 ‘연대’는 얼마나 구차한가. 시민에게는 우리와 연대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우리가 시민들에게 해준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이것은 예술가의 의무에 대한 이야기다. 예술가에게는 일단 사회를 위무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이 이 차갑고 냉정한 사회에서 예술이 해야 하는 몫이며 할 수 있는 유일한 몫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예술가라는 종자들을 도대체 뭣에 써먹는단 말인가. 그 의무를 다하지 않고 말하는 연대는 얼마나 뻔뻔한가. 이명박이 이랬어요 유인촌이 저랬어요를 넘어서, 더 뜨겁게 위로하고 위무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런 일은 또 일어나고 또 일어나고 또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기어이 행한 대로 받을 것이다. 그러니 연대를 만들자, 바로 지금부터.

김현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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