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기자
자신의 병이 치유될 수 없다는 의사의 설명을 들었을 때, 사람이 가장 먼저 나타내는 반응은 ‘부정’이라고 심리학자들은 설명한다. ‘나한테 그런 일이 생길 리 없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더는 부정할 수 없게 되면 분노의 단계를 거치고, 타협·우울의 단계를 지나, 마침내 죽음을 수용하고 편하게 마지막을 준비하는 수용의 단계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그 첫번째인 ‘부정의 단계’도 쓸모없는 과정은 아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을 한번에 인정할 경우 오히려 부작용이 생기는데, 부정은 환자가 갑작스런 절망에 빠져 자제력을 잃는 것을 막아준다. 그리하여, 현실을 인정하고 난 뒤 자신이 기댈 곳을 찾을 시간 여유를 준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이명박 정부의 민주주의 후퇴를 경고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각계의 시국선언이 퍼지고 있다. 우리 현대사에서 지식인들의 시국선언은 집권세력에 대한 ‘정치적 암’ 선고임을 그동안 여러 차례 보여준 바 있다. 치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국선언의 처방을 따르지 않은 정치세력의 끝은 불행했다.
한나라당 안에서도 “귀를 열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을 보면, 민심을 읽는 사람이 전혀 없지는 않은 듯하다. 하지만 시국선언을 대하는 집권세력의 주된 태도는 부정이다. 어떤 이들은 서울대 교수의 시국선언은 전체 교수 1786명 가운데 겨우 124명만 참가한, 대표성 없는 것이라 깎아내린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국정지지도가 얼마인지를 먼저 살폈다면, 그런 식의 언급은 하지 않았으리라. 서울광장을 틀어막는 서울시나 경찰의 태도도 별반 다르지 않다. 부정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에 맞닥뜨렸을 때 거칠 필요가 있는 자연스런 단계지만, 그 과정이 길어지면 몸을 더 축낸다는 걸 기억할 일이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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