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정 르포작가
6월, 어느덧 시간이 올해 한복판쯤에 왔다. 봄을 지나는 동안 일 때문에 여러 지역을 돌았다. 다니다 보니 빈 논에 모를 내 이제 곳곳이 풀빛이다. 일찍 모를 내거나 늦게 모를 낸 차이로 옅고 진하기가 다르다. 나뭇잎들은 푸른빛을 뿜어내, 꽃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말한다. 그만큼 시간이 갔다. 겨울에서 봄을 지나, 여름이다. 거리, 사람들 옷이 짧아졌다. 밝고 가벼운 빛깔이다. 바뀐 옷이 시간을 말한다.
그런데 세 계절 내내 똑같은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검은 상복을 다섯 달이 되도록 벗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용산’ 유가족들이다. 봄옷도, 여름옷도 이들은 입지 못한다. 유가족들이 상복을 벗을 수 없는 한, 이 사회는 저 1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009년은 계속 ‘지난 1월20일’로 시작할 거다.
호소하려고 옥상에 올라 망루를 지은 지 하루 만에 죽어 내려와야 했던 사람들. 여전히 용산 남일당 건물 1층에는 영정이 그대로 있다. “용산참사 140일 해결 촉구와 6·10 항쟁 22주년 현장문화제”가 열렸던 날, 용산에 걸린 펼침막에 새겨진 글귀처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인권영화제에 상영된, 장호경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제목이기도 하다) 그이들이 살았을 때 뜻대로 호소할 시간을 털끝만큼도 내주지 않았던 정부는, 억울한 죽음의 책임을 잔인하게 그이들과 동료들에게 되돌렸다. 그리고 아예 그 죽음을 모른체한다. 죽은 이들이 명예회복이 되지 않는 한, 이 사회는 저 용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009년은 계속 ‘용산에서’로 시작할 거다.
지난 1월20일 용산에서 사람들이 죽임당한 지 다섯 달이 된다. 오는 토요일이 그날이다. 지역을 도는 동안 그래도 서울에 사니 용산 소식을 좀 들었을까, 사람들이 내게 묻곤 했다. “용산은 어떻게 돼간대요?” 그 사람들이나 나나 아무 소식을 듣지 못한 건 마찬가지. 아직까지 정부가 유가족에게 사과한다는 소식도, 진상규명한다는 소식도, 책임자를 처벌한다는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해결을 위한 어떤 소리도 그쪽에선 들리지 않는다. 검찰은 수사기록 3000쪽을 내놓지 않는다. 감출 게 많은 걸까. 모든 요구와 외침에 아무 반응 보이지 않기, “불법”으로 몰고 폭력으로 대응하기, 연행하기, 소환장 마구 내기, 잡아 가두기가 정부가 하는 반응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스스로 말라 죽겠지, 제풀에 화병으로 쓰러지겠지 하고 기다리는 건지.
아마 그런 일은 없을 거다. 무엇보다 가장 앞에 서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유가족이 이 오랜 시간과의 싸움에서 굽히지 않는다. 속속들이 알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볼 뿐이지만, 시간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내 눈에는 아내라는 자리, 자식이라는 자리를 뛰어넘어 ‘사람’에 대해, ‘진실’에 대해, ‘사랑’에 대해 연대하는 것으로 비친다. 굳이 연대라는 말을 덧붙일 필요도 없이.
지난 1월20일 용산에서 벌어진 일은 유가족만이, 용산4구역 철거민만이 감당해야 할 일이 아니다. 서로 뒷배 봐주는 건설재벌·정부·경찰·철거용역폭력이, 개발과 성장만이 ‘선’인 양 행세하는 이 사회가 ‘사람’을 죽였는데 그이들 일로만 미룰 순 없잖은가. 6·10 항쟁 22주년 그날에, 문학·예술인과 학생·시민이 유가족·철거민과 함께 용산에서 다양한 문화행동을 한 건, 민주주의든 그 어떤 가치든 오늘 ‘용산’을 피할 수 없다고 말한 게 아닐까. 다섯 달은 짧지 않다. 잔인하게 길다. 그동안 유가족의 호소가 부족한 게 아니라 ‘내’ 귀 기울임이 부족해, 사람들은 벌써 용산을 잊었을 거라 정부가 업신여기는 건 아닌지 가슴이 뜨끔하다.
박수정 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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