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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비료

등록 2005-05-23 19:57수정 2006-02-21 18:35

유레카
비료

경제학이 ‘우울한 학문’이 된 것은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1766~1834)의 <인구론>에 뿌리가 있다. 그는 “식량 증산이 인구 증가를 따라가지 못해 인류는 큰 재앙을 맞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의 예언을 빗나가게 만든 데는 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다. 특히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1868~1934)의 공이 크다. 그는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시켜 화학비료를 만드는 방법을 통해 식량 증산의 길을 열었다.

1920년대만 해도 작은 어촌이던 함경남도 흥남이 1·4 후퇴 때 유엔군과 각지의 피란민이 몰려든 큰 항구도시가 된 것도 비료와 관련이 있다. 30년에 일본인이 하버의 공법을 적용한 비료공장을 흥남에 지었던 것이다. 흥남비료 공장은 당시 세계 질소비료 생산량의 10%나 되는 연 48만톤을 생산했다. 그 중 70%를 ‘이남’에서 썼는데, 분단으로 비료 공급이 끊긴 것이 남쪽의 식량난을 키웠다.

지금 ‘흥남비료연합기업소’의 질소비료 생산능력은 연 133만톤이라고 한다. 그러나 설비가 낡아 고장이 잦고 연료가 부족해 제대로 가동이 안 되고 있다. 북한 전체의 비료 생산량도 93년 160만톤에서 2003년 41만톤까지 줄었다. 지난주 열린 남북 차관급 회담에서 북쪽은 이미 요청한 50만톤의 비료 중 20만톤을 5월 말까지 보내달라고 ‘절박하게’ 요청했다. 파종기인 지금 밑거름을 줘야 효과가 높기 때문일 터이다. 무게를 기준으로 비료는 지원 효과가 쌀의 세 배라고 한다.

비료를 실어가기 위해 북녘 배가 21년 만에 내려왔는데, 일부에서는 협상에서 얻은 것도 없이 비료만 준다고 정부를 나무라기도 한다. 그러나 비료는 군량미로 쓸 수 없고 그것으로 총알을 만들지도 못한다. 쌀보다 더 인도적인 차원에서 지원해야 할 품목이다. 한림원이 하버에게 노벨상을 준 뜻을 생각하면, 비료를 협상 수단으로 쓴 것부터 쩨쩨했다는 느낌이 든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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