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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찍히면 뭉친다 그리고 / 김경애

등록 2009-06-30 21:24

김경애  사람팀장
김경애 사람팀장
“해직기자가 무슨 뜻인가요?”

몇해 전 미국의 한 저널리즘스쿨에 연수를 온 여러 나라 언론인들에게 ‘한겨레신문의 탄생과 한국의 언론자유’를 소개했을 때 가장 먼저 들어온 질문이다. “수십년 전 군사정권과 그 추종세력들이 독재를 비판하고 민주주의를 요구했다는 이유로 수많은 언론인들을 거리로 내쫓았다. 하지만 그들은 지난한 투쟁 끝에 국민들의 성금을 모아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새 신문을 만들었다.” 굴곡진 우리 현대사의 치부를 드러내야 했지만 결코 부끄럽지 않았다. 여전히 검열과 탄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중국과 동유럽권의 언론인들로부터는 부러움 가득한 박수를 받기까지 했다.

지난해 한 대학의 언론 전공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해직’은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과거사이고, ‘한겨레’는 전세계가 부러워하는 ‘한국 민주화의 상징’이 됐다고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런데 불과 1년 남짓 사이, 해직과 해고 사태는 엄연한 현실이자 일상사가 되고 있다.

<와이티엔>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 기자 6명 해고, <한국방송> 정연주 사장 해임에 이은 ‘새 사장 반대’ 기자와 피디 3명 정직, 청와대 <문화방송> 엄기영 사장 사퇴 압박, <중앙일보> 촛불 관련 보도를 비판한 기자 계약해지 ….

언론계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공권력을 앞세운 ‘찍어내기’, ‘밀어내기’, ‘마녀사냥’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

일제고사 대신 현장학습을 지도한 교사 8명 해직 … ‘교사 1만7천명 시국선언’을 주도한 전교조 교사 88명 고발·해임·정직 등 중징계 방침, 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비판한 나주세무서 소속 김동일 계장 파면 결정, 공무원 노조 시국선언 추진에 사법처리와 선징계 엄포,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김정헌 전 한국문화예술위원장·박래부 전 언론재단 이사장 중도 퇴진에 이은 황지우 한예종 총장 파면, 국립오페라단 합창단 해체 강행, 쌍용차 976명 최종 정리해고 통보 ….

한마디로 ‘찍히면 죽는다’가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 안에서조차 이런 인식이 퍼져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지난 4·29 재보궐선거 참패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과 청와대의 일방독주를 견제하는 목소리가 당내에서 맥을 못 추는 이유가 뭐냐는 물음에, 어느 여당 의원 보좌관이 했던 말이다. “반드시 보복을 당하니까요.”


마치 민주화 이전의 시점으로 되돌아간 듯한 기시감은, 그때 그 시절 거리로 쫓겨났던 ‘해직 선배’들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긴급조치 시대 민주화 운동의 주축과 핵심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분야, 다양한 직종, 다양한 연령층이 어울렸다고 해야 옳다. 안온한 세월이었으면 일생을 두고 서로 마주치지 못했을 사람들, 이를테면 변호사·목사·신부·여성운동가·노동운동가·농민운동가·대학교수·해직 언론인들이 서로 사귈 수 있었으니 말이다. …중국 문화대혁명 시대 구호의 하나인 ‘노·장·청 결합’을 긴급조치가 유도한 이상한 꼴이 되었다.”

해직 언론인 출신 임재경 선생은 본지 ‘길을 찾아서’에 연재했던 회고담에서 이를 ‘자연의 섭리’라고 했다. 뒤이어 등장한 한승헌 변호사도 “여기저기서 쫓겨난 사람들이 바람 부는 벌판에서 만나게 된다. 그리고 한 시대의 운명적인 동승자라는 느낌을 안고, 서로 마음과 체온을 나누며 무리를 이루어간다”고 토로했다.

다시 말해서 ‘찍히면 뭉친다’는 얘기다. 그리고 ‘뭉치면 언젠가는 터진다’는 사실도 우리는 이미 체험으로 알고 있다.

김경애 사람팀장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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