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정 르포작가
평택역에 내렸다. 백화점이 들어선 역사 안팎이 낯설다. 예전에 팽성읍 대추리 농민들은 자기 땅에서 쫓겨나야 했다. 지금 칠괴동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자기 일터에서 쫓겨나게 되어 파업중이다. 사람을 쫓아내는 일은 여전하다.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뒷문을 경찰버스가 막아섰다. 넓은 공장 둘레에 경찰이 진을 쳤다. 이 시절, 어디고 빠지지 않는 흔한 풍경이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공단 길, 경찰이 둘씩 짝지어 경계를 선다. 안에선 파업을 하는데 밖에선 그걸 범죄로 몬다.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뒷문 건너 작은 공원에 크고 네모난 천막이 쳐졌다. 공장에 물을 공급하는 펌프모터를 지키는 천막이다. 지난 6월30일과 7월1일, 회사에서 펌프모터를 망가뜨려, 사람들이 마시고 씻을 물이 부족했다고 한다. 하지만 안에서 파업 노동자들이 걱정한 건 자신들이 아니다. 단전·단수는 도장공장에 있는 페인트를 굳게 해 위험하다고 한다. 노조는 급히 망가진 펌프모터를 고쳤다. 다시 공장을 가동하는 날, 바로 일을 시작하기를 누구보다 바라는 이들이다.
공장 안 도장 삼거리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파업하면서 그 길에 이름을 붙였다. ‘승리의 광장’. 거기 앉은 이들은 모두 쌍용자동차 노동자다. 정규·비정규직, 평택공장·창원공장·구로정비사업소, 해고·비해고자가 한데 어우러졌다. 약 1000명이다. 공장을 벗어나면 평범한 시민이고, 누군가의 아들이고 아빠이고 남편이고 친구일 사람들이다. 팔을 내뻗어 구호를 외치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 이들이 한목소리로 외친다. “해고는 살인”이라고. 이 말이 상징이면 좋으련만 현실이다. 정리해고가 진행되는 동안, 가족을 포함해 여섯 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다.
도장2공장 벽에 걸린 펼침막에 큰 글씨로 ‘함께 살자’가 쓰였다. 노동자들이 입은 옷에도 ‘함께 살자’가 적혔다. 머리를 맞대면 함께 살 방법이 아무러면 나오지 않겠는가. 어려운 시기를 함께 살아 이겨내지 않고 내치는 게 기업한테 옳고 좋은 방법일까. ‘산 자’가 되어 구사대로 동원되었던 노동자들은 알 거다. 지금까지 해마다 쌍용자동차에서 “소리 없이 쫓겨나간 노동자들”이 있다는 걸. “6년 일하는 동안 업체가 두 번, 사장이 네 번, 부서가 세 번 바뀌고, 열악하고 힘든 일을 하면서도 최저임금에 1원을 더 보탠 돈을 받고 일을 하다 문자로 해고통지를 받는 노동자들”이 있다는 걸. ‘2646명 정리해고 숫자’에 포함되지도 않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는 걸. 공장에서 “함께 살자”고 외치는 동료들과 지금 함께하지 않으면 “분사화”를 내거는 회사는 ‘산 자’들에게도 곧 저 삶을 강요할 거다.
도장공장 앞 70미터 굴뚝 위에 세 노동자가 있다. 오른 지 50일이 넘었다. 아래에서 바라보는 노동자들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지 40일이 넘었다. 늘 “쌍차 가족 여러분”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정리해고 철회·분사요구 철회·비정규직을 포함한 총고용 보장”을 요구한다. 그저 요구만 하는 게 아니다. 몇 차례 걸쳐 모든 걸 양보하는 인건비 절감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회사나 경찰은 헬기를 띄워 선전지를 뿌리기보다는 대화할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아무런 입장을 발표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정부도 마찬가지다.
기계가 멈춘 공장, 한 노동자는 이 정리해고를 “집단 학살”이라고 했다. 그걸 멈추기에 지금은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시간이다. ‘외부세력’은 별다른 이들이 아니다. 곳곳에서 쌀과 김치, 물품들을 보내는 이들로 셀 수 없이 많다. 아빠를 만나러 와, 경찰에 막혀 철망 너머로 바라보는 어린아이들이다. 아내들이다. 그 외부세력들은 ‘함께 살자’는 바람이 이루어질 날을 밖에서 조마조마 기다린다.
박수정 르포작가
박수정 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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