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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과경제] 생각을 바꿔야 중산층이 산다 / 우종원

등록 2009-07-08 21:04

우종원  일본 사이타마대 교수·경제학
우종원 일본 사이타마대 교수·경제학
근래 일본에는 이유 없는 살인이 다발하고 있다. 지난 일요일에도 한 사내가 파친코에 불을 질러 4명이 죽었다. “일도 없고 돈도 없고 인생이 싫었다. 누구든 좋으니 죽이고 싶었다”는 게 범행 동기였다. 일본 사회가 우려하는 것은 이런 심리의 밑자락에 깔린 보통 사람들의 균열이다. 없는 자의 원한이라면 가진 자에게 돌려지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자신과 별다를 게 없는 “누구든”에게 복수의 날이 향하고 있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균열은 중산층의 붕괴에서 시작되었다. 예전에 일본은 “1억 총 중류”를 자랑했다. 누구나 노력하면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의식이 건강한 사회를 지탱한 것이다. 하지만 장기 침체와 비정규직의 증대가 이를 무너뜨렸다. 열심히 해도 중산층에 진입할 수 없다는 좌절이 중산층 자체에 대한 울분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그 왜곡된 형태의 하나가 “기득권” 논의다. 정규직은 기득권 세력이고, 이들의 혜택을 줄여야만 비정규직의 처우가 개선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양자 사이의 불합리한 차는 시정되어야 한다. 여지껏 노동조합이 비정규직을 소홀히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비정규직 문제가 정규직 때문에 발생하는 양 호도하는 것은 사회의 균열을 조장하는 음습한 주장이다. 이런 점에선 비정규직법안이 처리 안 된 것을 “정규직 중심”의 노동계 탓으로 돌린 이영희 노동부 장관의 발언도 온당치 못하다.

올바른 길은 정규직을 위시한 중산층의 현 지위를 유지하면서 아래 계층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일본보다 더 가파르게 중산층이 붕괴되고 있는 현실이다. 흔히들 우리 사회는 이념 대립이 심하다 하지만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생기는 계층 대립이야말로 우리 앞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다. 이대로 두면 두려울 정도로 균열이 확대될 것이다.

어떻게 해야 중산층을 살리고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을까.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실시도 좋고 “엠비(MB)서민정책추진본부”의 구성도 좋다. 하지만 정책 이전에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중산층은 기본적으로 근로소득에 의존한다. 일 자체를 안정화하고 그 가치를 높이는 것이 중산층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보다 중산층 살리기에 분투하고 있는 일본의 경험에서 실마리를 찾아보자.

내륙부 나가노현의 시골에 있는 ㅅ공업. 자본금 5000만엔, 종업원 71명의 작은 도금회사다. 그렇지만 삼성에도 납품하는 알찬 회사다. 7, 8년 전부터 자기 지방 대졸자를 적극 채용해 기술개발에 힘을 쏟은 것이 주효했다. 매달 한 차례 강사를 초빙해 전 종업원 대상의 교육도 실시한다. ㄱ사장은 “무엇보다도 사람에 투자하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도 이런 기업가가 많아져야 한다.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의 인사담당자 ㅎ씨. 그는 3년 기한의 비정규직을 다시 몇 개의 계층으로 나눠 고용조건과 보수를 차별화하자는 상부 방침에 한사코 반대해, 결국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켰다. “층을 나누면 상위 소수는 인센티브를 얻을지 모르지만 하위 다수는 오히려 의욕을 잃게 됩니다. 비정규직도 귀중한 인재인데 소홀히 할 순 없잖아요.” 우리도 이런 기골 있는 관리자를 많이 키워야 한다.

생계가 어려운 가계를 지원하는 것은 절실하다. 하지만 이것으로 중산층이 살아나진 않는다. “휴먼 뉴딜”을 얘기하면서 정부가 솔선해 비정규직을 해고하는 정책이 중산층을 살릴 수 있는 건 더구나 아니다. 실제로 사람을 중시해야 한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기업을 지원하고, 사람을 고용해 육성하는 경영관리자를 장려해야 한다. 정책은 바로 이들에게 필요한 자원이 배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우종원 일본 사이타마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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