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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위구르 / 권태선

등록 2009-07-14 18:23

권태선 논설위원
권태선 논설위원
180여명의 사망자와 800명 이상의 부상자를 낸 위구르 사태로 주목받고 있는 위구르족이 역사 무대에 등장한 것은 8세기다. 744년 돌궐을 멸망시키고 몽골 지역의 지배자가 된 위구르족은 중국의 당 왕조와 협력하면서 발전하다가 840년 키르기스의 공격으로 멸망했다. 나라를 잃은 채 이민족들의 지배 속에서 민족적 정체성을 잃어가던 이들이 위구르란 이름을 되찾은 것은 1921년이다. 타슈켄트에서 열린 동투르키스탄 대표자회의가 신장을 지배했던 영광스런 역사를 갖고 있는 위구르를 되살리자는 민족시인 압둘할릭의 호소를 받아들여 위구르혁명동맹을 결성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위구르’는 인공적으로 형성된 민족집단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위구르혁명동맹은 군벌과 국민당 정권에 맞서 1933년과 44년 두 차례 독립을 선언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당시 국공내전 상태에 있던 공산당은 소수민족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민족의 자결권·분리권을 인정하는 정책을 채택했다. 그러나 국공내전이 종결돼 가면서 이 정책은 폐기됐고 “각 민족 자치 지역은 모두 중화인민공화국의 불가분의 일부”라고 헌법에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중국 공산당 정권은 부르주아 민족주의 극복을 위한 민족융화론을 제창하며 대약진운동 이후 한족의 소수민족지역 이주를 장려했다. 위구르자치구는 그 가운데서도 한족 이주가 가장 활발했던 지역이다. 그 결과 55년 총인구의 6%에 불과했던 한족은 지금 41%로 늘었고, 70%가 넘던 위구르족은 45%로 줄었다. 이주 한족들이 지역경제를 장악하면서 갈등은 심화됐다. 이 지역 경제 상황은 “양을 키우는 사람은 카자흐족, 파는 사람은 위구르족, 먹는 사람은 한족”이란 말로 요약된다. 민족 갈등을 키운 것은 중국 정부 정책인 셈이다.

권태선 논설위원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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