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 에세이스트
“너희는 20만원 걸고 싸우지만 우리는 목숨 걸고 싸운다”라고 용역 깡패들을 향해 부르짖는 쌍용자동차 노조의 외침은 처절했지만, 20만원 일당 받고 일하는 이 사람들 뒤에는 든든한 ‘빽’이 있다. 경찰은 곧 공권력 투입을 준비하고 있다 하고, 용역과 공권력은 평택에서도 아마 손발이 몹시 잘 맞을 것이다, 지금까지 어디에서나 그랬듯이. 작년 여름 기륭전자 정문 앞의 골리앗 시위에서 전투경찰은 심지어 용역의 지시를 받아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만화가 최규석은 이 광경을 보고 몽둥이와 경찰방패를 든 포돌이와 용역이 서로 어깨동무를 한 채 웃고 있는 ‘피를 나눈 형제’라는 제목의 기막힌 만화를 그렸다. 이들의 협동이 가장 성공적이면서 비극적이었던 곳은 용산참사 현장이었다. 용역 깡패들이 ‘POLICIA’라고 쓰여 있는 방패를 들고 경찰과 함께 서 있었다니 더 말할 것도 없다.
2년 계약을 한 전셋집에서 10개월 살고 철거 통보로 쫓겨날 때, 그 과정을 쭉 지휘한 이들은 얼굴에 ‘용역’이라고 쓰여 있는 덩치 큰 남자들이었다. “여기 싹 치워 노쇼잉. 이따 아그들 보내서 확인할 탱게”라고 말하는 그들은 내 집 기물을 파손한 것도 소리를 친 것도 나를 때린 것도 아니었지만, 무서웠다. 어쨌거나 이들은 언제나 피를 나눈 형제처럼 함께 움직이지만, 이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경찰과 용역 간의 이러한 협동 관계를 끊을 수만 있다면 문제는 한결 덜 야만적이고 덜 비극적이 될 것이라는 게 철거민과 재개발 문제를 겪고 또 지켜봐 온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하지만 이 굳건한 연대가 건설산업을 그토록 잘 먹여살려 온 지지대 중의 하나이므로 쉽사리 깨지지 않을 것이다. 참사 이전에도 용역들은 철거민들의 일터에 들이닥쳐 소란을 피우거나 기물을 파손하거나 폭행을 가한 바 있고, 경찰은 그때마다 늑장 출동은 물론 피해를 당하고 있는 철거민들에게 도움을 준 적이 없다는 게 용산뿐 아니라 모든 철거민들의 싸움터에서 하나같이 들려오는 고통스런 목소리다. 경찰과 용역이 힘을 합쳐 누구의 편을 들고 있는지는 확실하다. 그러나 이 ‘피를 나눈 형제’ 관계를 어떻게 끊을 것인가?
작년 강남성모병원(현 서울성모병원) 비정규직 현장을 방문했을 때 얼굴 보러 들른 남자 후배 녀석이 정문을 지키고 있는 용역을 보더니 갑자기 야 인마, 하고 말을 걸었다. 오랜만인지 둘은 포옹을 하고 한참 수다를 떨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펼침막과 선전물을 뺏겠다고 옥신각신 나와 몸싸움을 했던 그 ‘용역’ 놈은 그렇게 해서 ‘용역’이 아니라 ‘후배의 친구’가 되었다. 후배는 멋쩍은 듯이 말했다, 쟤 참 착해. 기륭전자 앞에서 이 ×놈의 기집애, 라고 내뱉던 그 용역도 누구의 선배이거나 후배이거나 아는 동생일 것이다, 쇠파이프 든 악마가 아닌 것이다. 오래전에 다니던 체육관 오빠들도 간혹 돈이 없으면 그런 아르바이트를 했다. 막아서는 철거민들 앞에서 해머를 들고 집을 두들겨 부수는 일이었다. 친구가 혹은 친한 형이 소개해서 일을 나간 오빠들은 당연히 경찰이 정의의 편이고, 법대로 나가라고 하는데 안 나가겠다고 버티는 사람들이 악당이고, 그러므로 자신들이 하는 일은 정의의 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착한 오빠들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이 옳다고 굳게 믿었다. 쌍용차 공장 앞에서 하루 20만원씩 받고 있는 그 사람들도 그럴 거라는 생각을 하면 그저 말문이 탁, 막히고 만다. 경찰과 용역 간의 긴밀한 관계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어떻게, 어디부터 끊을 것인가?
김현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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