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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나폴레옹도 후회했을까 / 김경애

등록 2009-07-21 22:01수정 2009-07-22 22:02

김경애 사람팀장
김경애 사람팀장
“어? 여기가 아닌가벼!” 나폴레옹이 ‘나를 따르라’고 큰소리치며 알프스를 오르더니 엉뚱한 정상에서 기껏 이렇게 이야기했단다. 이 오래된 우스갯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심 궁금한 상상이 일곤 했다.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던 영웅 나폴레옹은 그 순간 후회했을까? 과연 그는 부하들에게 사과를 했을까?

흔히 지도자 한 사람의 잘못된 신념과 무모한 결정이 전체 조직이나 사회에 커다란 피해를 안겨줄 수 있음을 경고하는 이 ‘우화’가 요즘 새삼 우스갯소리로만 들리지 않는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이뤄진 한 사람의 ‘오판’이 지금까지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국내 첫 하버드 박사 출신의 건축학자’에서 민속연구가로 변신한 고 조자용 선생은 한때의 실수를 되갚고자 평생토록 참회하며 산 ‘극적인 반전의 인생’이었다.

20여년 전 대학 대선배의 남편이란 인연으로 찾아간 속리산 자락의 삼신당마을에서 조 선생은 신선 같은 풍모와 구수한 입담으로 밤새도록 돌판에 삼겹살을 구워주며 우리 민속의 매력과 가치를 들려줬다. 당시 서울에서 옮겨온 에밀레박물관에는 그가 20년 가까이 전국을 돌며 사재를 몽땅 털어 수집한 온갖 민속생활용품이 가득했고, 마을 자체는 방방곡곡에서 초가집들을 통째로 뜯어와 그대로 재현해놓은 것이었다. 심지어 여대생 손님들을 맞기 위해 그가 손수 자갈과 절구통을 활용해 지어놓은 수세식 화장실도 초가지붕이었다.

그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 까닭은, 그가 그처럼 우리 것을 모으고 지키는 데 ‘광적인 애착’을 갖게 된 사연 때문이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대대적인 농촌 지붕개량 사업을 밀어붙여 초가지붕을 없어지게 한 장본인이 바로 그였다. 당시 미국에서 배워온 첨단기술인 ‘슬레이트 지붕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이다.

그는 곧 실수를 절감하고 2000년 타계할 때까지 민속보존운동에 헌신했지만 ‘한국 건축사에서 6·25에 이어 두 번째 큰 비극’으로까지 혹평받는 초가지붕 멸종사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이달 초 세상을 뜬 로버트 맥나마라 역시 ‘베트남전쟁의 설계자이자 반대자’라는 극적인 반전의 인생을 살았다. 하버드대 교수 출신의 ‘천재 통계학자’로 1960년대 전반 케네디와 존슨 행정부에 걸쳐 국방장관으로서 베트남전을 설계하고 지휘한 인물로 유명해진 그는 60년대 후반 들어 ‘자신의 계산 착오’를 깨닫고 미군의 개입을 반대하다 장관 자리에서 밀려나 또 한 번 유명해졌다.

전쟁 초기 ‘맥나마라의 전쟁’이라고 비난받았을 때 “그렇게 정의된다는 게 기쁘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하겠다”고 말했던 그는 지난 95년 펴낸 회고록에서 “틀렸다. 끔찍하게 틀렸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미 6만명 가까운 미군과 베트남인 30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뒤였다. 이 때문에 회고록이 나왔을 때 그의 ‘때늦은 후회’는 책임과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전쟁 피해 가족들의 사과 요구를 내내 묵살한 그는 “역사의 교훈을 삼고자” 책을 썼다고 말했다.

‘후회 없는 인생은 없다’지만, 이처럼 그 후회가 개인사를 넘어 사회와 역사 전체에 폐해를 남겼을 때는 돌이킬 수도 없으니 두려운 일이다. ‘4대강 살리기’란 명분으로 사실상 대운하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는 대통령과 추진세력들은 정말 후회하지 않을 확신이 있는 것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새만금은 죽어가고 있는데 말이다.

김경애 사람팀장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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