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22일 날치기 처리된 미디어법이라고 불리는 매우 특별한 법은,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경영이 점점 어려워지는 조중동 세 신문회사가 방송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해주는 내용을 뼈대로 하고 있다. 방송산업의 확대를 통한 고용정책이라는 둥, 그간 해괴한 소리들이 있었지만, 본질은 조중동의 방송 진출이다. 노무현 서거 후 잠시 휴지기를 갖던 여야가 이 미디어법을 놓고 대격돌을 벌였는데, 힘에 부친 민주당이 의원 총사퇴를 결정하기 직전이다. 내각제 국가에서는 국회 해산이 사실상 정례화되어 있고, 일본은 단 한 번만 중의원이 임기까지 갔고, 대부분 조기 해산했다. 그러나 대통령 중심제인 한국에서 의원 총사퇴는 전례가 없던 일이다.
사태를 되짚어보면, 결국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최종적 의사결정권이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리고 이 나라가 누구의 나라인가를 가리는 대혈전이 지금 우리가 보는 이 형국이 아닐까 한다. 미디어법 앞에서는 대통령도 아무것도 아니다. 한국에 중요한 기업이 도대체 몇 개인데, 그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 신문사 세 개의 생존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대통령도 아무것도 아닌데, 한나라당이 한국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나? 그들은 그냥 거수기일 뿐이다. 대통령과 한나라당도 실권이 없는데, 초라한 의석수의 야당은 더 말해서 무엇할 것인가? 슬프지만, 이 나라는 국민들의 나라가 아니다. 대의제 민주주의라고 말하지만, 국민 60% 이상이 반대하는 이 법안 앞에서 국민은 국민도 아니다.
조중동에도 묻고 싶다. 이렇게까지 공중파에 진출하거나 종합편성 채널을 가져서 장기적으로 이익이 되겠는가? 기업은 이익을 위해서 무엇이나 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적당한 선이 있는 법이다. 제1야당이 총사퇴까지 꺼내든 이 상황, 이것은 조중동에도 좋지 않다. 미래 방송산업을 통한 국민경제의 활성화라는 말로 상황이 덮어지지가 않을 것이다. 물론 국민들이 결국은 이 사실을 잊게 될 것이고, 몇 달만 지나면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금 그럴 분위기가 아니다. 명실상부하게 자신들이 한국의 주인이라고 이렇게 만천하에 보인다고 해서 국민들의 지지를 얻고 또 존경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실익도 없고, 이렇게 억지로 방송을 장악한다고 해도, 그 장악이 오래갈 수는 없다. 국민을 잠깐 이길 수는 있지만, 계속 이기기는 어렵다.
어쨌든 이 혼돈 속에서 한국의 정치는 꿈틀거리며 요동치고 있다. 직권상정에 이은 날치기, 그리고 야당 총사퇴, 이렇게 순서대로 움직여 나갈 모양새인데, 이 싸움의 파장이 결코 작지는 않아 보인다. 좋으니 싫으니 해도 정치인들인 야당이 중간에 끼어서 일종의 안전판 구실을 해주는 것이 서로에게 편한 상황이기는 하다. 이제 미디어법으로 야당이 총사퇴하고 나면, 좋으나 싫으나 국민들이 직접 야당 노릇을 하는 수밖에 없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하는데, 권력의 원천인 국민들이 직접 나서게 되는 일이 결국에는 벌어지게 된다.
이 싸움의 의미는 명확하다. 도대체 누가 이 땅의 주인인가를 가려보자는 것 아닌가? 보수언론인가, 국민인가? 도대체 대한민국은 누구의 나라인가? 그 본질적 질문이 야당 총사퇴 뒤에 기다리고 있다. 이제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언제까지 이렇게 힘의 정치가 계속될지 당혹스럽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기껏 언론사 몇 개를 위해서 국가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야당 대신 국정 운영에 국민이 나서는 날, 한국이 조중동의 나라인지, 국민의 나라인지, 그때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우석훈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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