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하늘을 보던 사람들 / 박수정

등록 2009-07-26 21:11

박수정 르포작가
박수정 르포작가
휴대전화에 찍힌 문자. “쌍용차 비정규지회 정리해고 분쇄하고 비정규직 철폐하자 목숨….” 급히 컴퓨터를 켰다. 경기지방경찰청이 법원의 강제집행에 맞춰 아침 10시 쌍용차에 경찰력을 넣는다는 기자회견 소식이 뜬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픈 데 마음은 갈피를 못 잡고, 시간이 흐른다. 그 시각, 공장 안에 있는 노동자들 마음이, 가족으로 연결된 사람들 마음이 어떠하리라고 누가 짐작할까. 그 시각, 그이들을 알든 모르든 좋게 일이 풀리길 바랐던 사람들 마음은 어땠을까.

아무 말도 못 찾다가 “… 미안해요”라고 문자를 보냈다. 그때 누군가는 쌍용차 공장으로 달려갔을 거다. 그리고 그때 공장 안에 남편을 둔, 아직 서른이 안 된 한 여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둘째가 태어난 지 여덟 달이란다. 아이를 키운 경험으로, 그즈음 뭐든 입에 넣어주면 오물오물 먹을 때다, 이제 한창 엄마 얼굴을 익혀 떼어놓으려 하면 서럽게 울고불고할 때다. 여자를 들이덮친 게 두려움과 공포, 절망과 좌절이었을까. 그 무게와 깊이를 나는 가늠할 수 없다.

경찰력 투입 사흘째, 평택역에 모인 노동자들이 쌍용차를 향해 걸었다. 나처럼 대열 없이 혼자 온 할아버지들과 구호도, 노래도 없이 걸었다. 그저 마음이 가보라 시켜 나선 길들이다. 헬기 석 대가 머리 위로 날았다. 바람에 눈을 못 떴다. 얼굴과 목이 흙먼지 범벅이 되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정신이 없었다. “헬기가 40미터 공중에서 바람을 몰고 오는 건 엄청난 고통입니다, 공포입니다.” 쌍용차 노동자가 말한 그 헬기다. 낮게 날며 길녘 풀들을 자빠뜨렸다. 아무도 꺾이지 않았다.

공장 앞으로 가자 눈이 맵다. 최루가스다. 교통경찰도 눈 못 뜨고 기침을 해댔다. 시민들도 눈물이 흘러 더 쓰라린 눈을 어쩌지 못했다. 최루가스와 최루액을 바로 맞는 노동자들은? 헬기가 도장공장 바로 위에서 최루액이 담긴 비닐봉지를 툭툭 떨어뜨렸다. 아무렇지도 않게, 알을 줄줄이 낳듯이 쉬지 않고, 기막히게. 그건 폭탄과 진배없다. “최루액을 뿌리며”라고 쓴 기사들과 내 눈앞에서 떨어지는 저것! 그 사이 틈이 메울 수 없을 만큼 넓다.

공장 안팎에 진을 친 경찰, 공장 앞길로 줄지어 들어왔다 나가는 경찰차, 작업복 팔에 ‘정상조업’ 노란 띠를 두르고 몰려 오가는 직원들, 경찰이 드나들 때마다 바로 철문을 잠그는 쇠사슬, 확성기로 나오는 노래 ‘행진’, 여자와 남자가 번갈아 하는 방송… 이 모습과 소리가 이어졌다. 방송 목소리는 자꾸 우는 척했다. 눈물 한 방울, 그 안에 들었을까. 환자한테 의사를 보내는 데도 몇 시간이나 걸렸다. 구급차가 정문 앞에 와서 뒤꽁무니를 댔다 앞머리를 댔다 다시 돌아가길 얼마나 되풀이했는지. 가족, 인권활동가, 의사, 변호사, 무수한 기자, 카메라, 그 눈들을 회사와 경찰은 무시했다. “전쟁 때도 이러진 않았다.” 나이 든 목소리에 분노가 인다.

“이곳을 떠나면 내 새끼, 내 부모 목숨이 날아가기 때문에 죽지 않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스스로 가두고 기다린 시간이 60여일. 경찰력과 용역깡패 투입으로 답하는 정부와 회사가 무능해 보인다. “다 같이 죽자는 거냐”고 윽박지르는 소리가 얄밉다. “함께 살자”는데 왜 뒤집어 듣는가. “헬기 뜰 때 본 하늘, 비가 오면 70미터 굴뚝 위에서 고생하는 동지들 생각하며 본 하늘입니다. 오늘은 이것저것 생각 말고 그냥 한번 무심히 하늘을 봅시다. 저 하늘이 (지금은) 비록 흐리지만 맑은 날 어깨 겯고 함께 걷는 거 상상하면서 우리 미래 상상하면서” 어려움을 이겨내자며 서로 기대어 하늘을 보던 사람들이다.

박수정 르포작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내란을 일으키려다 사형당하다 1.

내란을 일으키려다 사형당하다

[사설] 윤석열·국힘의 헌재 흔들기 가당치 않다 2.

[사설] 윤석열·국힘의 헌재 흔들기 가당치 않다

나라야 어찌 되든, 윤석열의 헌재 ‘지연 전략’ [뉴스뷰리핑] 3.

나라야 어찌 되든, 윤석열의 헌재 ‘지연 전략’ [뉴스뷰리핑]

앞으로도 우린 파쇼와 싸우게 된다 [아침햇발] 4.

앞으로도 우린 파쇼와 싸우게 된다 [아침햇발]

트럼프의 MAGA, 곧 동아시아로 온다 [세계의 창] 5.

트럼프의 MAGA, 곧 동아시아로 온다 [세계의 창]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