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진 기자
조선 500년 왕들은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켜켜이 쌓인 상소와 결재서류를 보며 “잠도 청할 수가 없다”고 하소연하는 임금도 있었다. 따라야 할 것도 많았다. 군주로서 지켜야 할 예를 빼면, 대부분 백성을 섬기는 자로서 지켜야 할 덕목들이었다. 대표적인 게 말길(言路)에 관한 것이다. 일찍이 삼봉 정도전은 태조에게 “언관은 군주와 더불어 당당하게 시비를 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했고, 이 정신은 조선을 관통해 흘렀다. 정암 조광조는 이를 ‘언로통색론’(言路通塞論)으로 정리했다. 말길이 통하면 흥하고 막히면 망한다는 것이다. 시정의 빈한한 백성도 모두 할 말을 하는 곳, 군주가 그걸 잘 받아내는 곳, 선정과 덕치의 세상은 그렇게 열린다고 봤다.
고봉 기대승은 바른 소리를 잘해 46살 일생을 삭탈관직과 복직의 반복으로 보냈다. 선조의 공부(경연)를 맡았던 스승이기도 했다. 경연에서 그가 아뢴 말을 묶어 낸 책이 <논사록>이다. “천하의 모든 일은 시비가 분명한 뒤에야, 인심이 기꺼이 복종한다. … 비록 가려지고 잘리기도 하지만, 그 시비의 본마음은 끝이 없어지지 않는다. 언로가 열리면 국가가 안정되고 막히면 위태롭다. 지금 언로의 뿌리를 막고 힐문하려 하니, 이로부터 진언하는 자가 없을까 두렵다.” 누군가 “군왕이 여론에 끌려다녀서야 사직이 바로 서겠는가?” 물었을 때, 답은 이랬다. “조정과 나라를 바로 세울 가장 빠른 길을 놔두고 굳이 돌아서 가려 하는가?” 지고지엄한 임금의 말 한마디를 통치의 시작과 끝으로 양해했던 시대에도 이랬다.
대통령은 일이 많다. 갈 길도 멀다. 생각과 달리 여론이 계속 딴죽을 거는 것 같아 심기도 불편하다. 그래서 “내 진심을 몰라주는 야속한 사람들”의 입을 자꾸 막게 된다. 그가 듣지 않으니, 나라를 걱정하는 뭇 백성의 지혜는 하늘을 떠돈다.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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