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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과경제] ‘생활’이 곧 성장 동력이다 / 우종원

등록 2009-08-05 21:50

우종원  일본 사이타마대 교수·경제학
우종원 일본 사이타마대 교수·경제학
삶과경제
일본이 모처럼 정치 열기로 달아오르고 있다. 이달 말의 총선을 앞두고 정권 교체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1955년 결성된 이래 산업성장과 공공사업을 지렛대로 반세기에 걸쳐 권력을 지탱해 온 자민당이 소수당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이번 선거는 단지 집권당의 교체가 아니라 일본 사회의 골격 자체를 바꿀 공산이 크다. 첫째, 중앙집권형 정치구조가 지방분권형으로 이행하는 것이다. 둘째, 성장 전략이 극적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각 당은 다투어 공약을 발표했는데 자민당은 이전과 다름없이 “성장”을 전면에 내걸었다. 집중적인 경제대책 실시로 2010년에 2% 경제성장을 달성하고, 향후 3년간 200만명의 고용을 창출하며, 10년 안에 세대 수입을 100만엔 증가시킨다는 것이 그 뼈대다. 반면 정권 교체를 자신하는 민주당은 “생활”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중학교 졸업 때까지 1인당 연 31만엔의 아동수당 지급, 고속도로 통행료의 폐지, 구직자에게 월 10만엔의 직업훈련수당 지급, 최저임금 인상 등이 핵심 공약이다.

이때 “성장”과 “생활”이 단순히 “생활 없는 성장”과 “성장 없는 생활”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자민당도 선진국 정당의 일원인 만큼 생활을 경시하지 않는다. 다만 성장에 의거해서만이 생활이 풍요로워진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생활을 안정시켜야만 비로소 성장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자민당의 “성장을 통한 생활” 전략에, 민주당의 “생활을 통한 성장” 전략이 맞서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성장을 통한 생활” 전략은 국민들에게 신용을 잃고 있다. 우선 성장의 지렛대로 활용해 온 공공사업이 시쳇말로 약발이 안 먹히고 있다. 공공사업 규모가 비대해 “토건국가”라 불려 온 일본은 버블이 터진 후에도 경기 진작을 위해 추가 예산을 편성해 가며 건설 경기를 부추겼다. 하지만 재정 적자만 누적되었을 뿐 고용 창출에도 유효수요 확대에도 이렇다 할 효과를 보지 못했다.

산업과 기업의 성장이 국민 생활을 윤택하게 한다는 믿음도 깨어졌다. 2002년 이후 작년 경제위기가 닥치기까지 일본 기업은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이 기간 일본 노동자들의 월급(보너스 제외)은 오히려 30만6천엔에서 30만1천엔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노동생산성이 5%나 향상된 조건 아래서의 얘기다. 그 결과 국민소득 중에서 피용자 보수가 차지하는 노동분배율은 74.4%에서 70.4%로 4%포인트나 떨어졌다. 고용의 질도 나빠져 같은 기간 비정규직의 비율은 27.2%에서 33.5%로 6%포인트 이상 늘어났다.

따라서 이젠 기업을 통해서가 아니라 국민을 직접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훈련수당 지급, 최저임금 인상, 아동수당 지급 등으로 서민 생활을 먼저 향상시켜야만 내수가 늘고, 내수가 확대되어야만 기업도 살 수 있다는 민주당의 주장이 민심을 파고드는 까닭이 있는 것이다. 물론 민주당의 주장에도 난점은 있다. 정책 수행에 필요한 방대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는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 유권자들의 마음이 이 문제보다 “생활을 통한 성장”이라는 참신한 전략에 이끌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산업국가”, “토건국가”를 답습해 온 우리에게 일본의 현재는 무엇을 시사하는가. 요 몇 년 계속된 성장 속에서 과연 우리의 삶은 풍요로워졌는가. 이제 성장이 윤택한 삶을 가져다준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장 동력의 발굴이 곧 생활을 향상시켜 주는 게 아니라면, 생활 향상을 성장 동력으로 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정부와 정치가에게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우종원 일본 사이타마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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