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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해운대, 화해의 쓰나미 / 김경애

등록 2009-08-06 22:46

김경애 사람팀장
김경애 사람팀장
한겨레프리즘
한여름 극장가에 모처럼 반가운 ‘관객 쓰나미’가 몰려들고 있다. 대마도(쓰시마섬)의 화산 폭발 여파로 시속 700~800㎞에 파고 100m가 넘는 메가쓰나미가 부산 해안을 휩쓸게 된다는 영화 <해운대>가 몰고 오는 현상이다. 순수 국산 재난영화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는 속에 개봉한 영화는 13일 만에 500만명을 동원하더니 날로 강해지는 입소문을 타고 1000만명 ‘대박 고지’로 내달릴 기세다.

지난 주말 우연찮게 강남 한복판의 한 멀티플렉스 객석에서 <해운대>가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가운데 첫 500만 관객을 넘어서는 데 기여했다. 피서 절정기를 맞아 휴일 오후의 거리는 썰렁할 정도로 한산했지만 객석은 빈틈없이 꽉 찼다. 웃음과 눈물을 빚어내며 2시간을 꽉 채운 영화가 끝났을 때 관객들의 반응은 의외로 차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가공할 위력의 쓰나미 장면은 기대보다 훨씬 생생했지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꼭 등장하는 초인적 영웅 따위는 끝내 없었다. 당대의 간판급 스타들이 나왔지만 그들은 결코 주인공이 아니었다. 극적인 반전의 감동은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관객의 파고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이유는 뭘까? 사소한 것들에 목숨 걸며 서로 부대끼며 사는 보통 사람들이 함께 고난을 겪어내는 이야기의 힘이라는 분석이 들린다. ‘서민 영화’란 신조어도 뒤따른다.

그날 영화를 함께 본 친구들의 표정에 흐르던 느낌은 ‘어떤 개운함’ 같은 것이었다. 얼마 전 <트랜스포머 2>를 보고 났을 때의 공허감과 달리 가슴 한구석에 퍼지는 편안한 감동, 그것은 ‘화해의 쓰나미’가 안겨준 것이었다. 영화 속에서 사람들은 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해 때문에 공포와 고통과 슬픔을 겪으면서,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고 용서를 구하고 갈등을 씻어 보내며 마침내 살아남은 이들에 대한 사랑과 함께 살아가야 할 이들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사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메가쓰나미급 위기를 맞은 수많은 ‘해운대’가 널려 있다. 중무장한 경찰과 냉혹한 자본의 협공 앞에 사실상 백기투항을 강요받은 평택의 쌍용차 노조가 그렇고, 집권 다수당의 위력을 앞세운 언론법 개악 시도로 난장판이 된 국회가 그렇고, 언론법을 무기 삼은 ‘조중동 방송’의 진입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기존 방송과 군소 신문들이 그렇고, 막강한 자본력을 내세운 골리앗 슈퍼슈퍼마켓의 공세로 고사 지경에 놓인 동네슈퍼마켓이 그렇고, 10년간 쌓아온 교류와 협력의 원칙을 하루아침에 뒤집은 대립정책 탓에 파탄 지경에 이른 남북관계가 그렇고, 무자비한 삽질로 파헤쳐질 운명에 처한 4대강이 그렇고… 그 모든 갈등의 현장에서 터져 나오는 애원과 항변과 호소를 무시한 채 ‘자기 말만 하는’ 대통령의 독선 앞에서 무너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그렇다.

영화 속 메가쓰나미는 자연의 위협이지만, 현실의 쓰나미는 모두 사람이 만든 것이다. 나만 살아남겠다는, 남보다 더 잘살겠다는 이기심이 몰고 온 ‘파괴의 쓰나미’들이다. 하지만 사람이 만든 재난이니 사람이 막을 수도, 해결할 수도 있다는 역설도 가능하다. 기자 억류 사태로 더 꼬일 수 있었던 갈등을 전임 대통령이 직접 특사로 나서 극적으로 풀어내는 ‘북-미 관계’가 그 증거다.

자칭 타칭 ‘쌈마이 코미디의 대가’로 불리며 오랜 속앓이를 해온 윤제균 감독은 흥행 대박 소감을 묻자 차마 말을 맺지 못했단다. “내게도 이런 날이 오다니….” 지금 우리 모두가 가장 하고 싶고, 듣고 싶은 말이 아닐까.

김경애 사람팀장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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