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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분수의 제국 / 김중혁

등록 2009-08-19 21:04

김중혁 소설가
김중혁 소설가
동네 호수 옆에 분수가 있다. 분수라기보다 물기둥 같아서 볼 때마다 화들짝 놀란다. 광장 한가운데 분수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으니 광장이, 광장이 아니다. 저녁이 되면 분수에다 불빛 쏘고 낯간지러운 음악 틀면서 쇼를 벌이는데 그 모습이 보기 싫어서 반대쪽으로 산책을 한다. 반 바퀴 돌고 다시 거꾸로 반 바퀴 돈다. 잔잔한 호수가 있는데 화려한 분수가 왜 필요할까. 사람들은 광장에 나와서 분수만 본다. 그러라고 그렇게 만들었나 보다.

광화문광장에 갔더니 거기에도 분수가 있다. 플라워카펫이라는 것도 있다. 22만4537종의 꽃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사진 찍는 자리도 따로 마련해 두었다. 사람들은 광장에 나와서 분수만 보고, 꽃만 보고, 사진만 찍는다. 그러라고 그렇게 만들었나 보다. 광장의 사전적 의미가 바뀔지도 모르겠다. 광장이 언제부터 유원지였나. 동네 골목이 사라지고, 골목을 잃은 사람들이 광장에 몰려나와 사람들에 떠밀려가며 인공적으로 만들어놓은 꽃밭을 찍기 위해 디지털카메라의 셔터를 쉴 새 없이 눌러대는 풍경은, 참 슬프다.

몇 해 전 이탈리아 여행 중 광장에 갔던 기억이 난다. 저녁 8시쯤이었나, 광장에 나갔더니 수십명이 모여 있었다. 뭔 일 있나 싶어 함께 간 선배에게 물어봤더니, 아무 일 없단다. 평상시 모습이었다. 저녁이 되면 동네 사람들이 광장으로 몰려나와 선 채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고, 뭘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세상에 어찌나 열심히들 떠들어대시는지, 부러웠다. 들어보나 마나 별 이야기 아니겠지만 그래도 광장에 모여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러웠다. 광장에 사람이 모이려면 비어 있어야 한다. 비어 있어야 사람이 모이고, 비어 있어야 사람들이 빈 공간을 이야기로 채운다. 광장을 비워두지 않는 건 아마도 그곳에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걸 누군가 원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는 무슨, 사진이나 찍으면서, 하하하, 즐거운 인생, 화려하게 모아놓은 꽃구경이나 하면서, 꽃이 22만4537종이나 된대요, 22만4537이라는 숫자는 조선의 한양 천도일부터 광화문광장 개장일까지의 날수를 의미한대요, 라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상식을 전달하면서 그렇게 광장을 지나쳐 가길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광장은 멈추어 서서 대화를 하는 곳이다. 광장은 골목에서 나온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곳이다. 광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대화의 기술도 발달하지 못한다. 대화의 기술이란 설득의 기술과 다르다. 우리는 설득만 배우고 대화는 배우지 않는다. 설득은 상대방을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어떻게든 나를 상대방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것이다. 설득이란 자기중심적인 화법이다. 결론을 정해놓고 시작하는 이야기다. 대화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우리는 설득의 기술만 가르친다. 지식과 화술로 상대방을 요리하는 법, 재치와 임기응변으로 상대방을 내 편으로 만드는 법만 가르친다.

요즘 ‘지적 수준’이라는 말이 화제다. 그 말을 꺼낸 당사자는 지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최소한 1주일에 2~3권 이상의 사회과학, 인문과학 책을 읽고 매일 신문과 잡지의 글을 최소 3시간 이상 읽으라’는 충고까지 곁들였던데, 다 맞는 이야기지만 모든 걸 책에서 배울 수는 없다. 설득의 기술만 배운 사람에게 지식이란 장식에 불과하다. 광장 한가운데 높이 솟아 있는, 화려한 분수가 될 뿐이다. 광장이 있다면, 분수가 없는 광장이 있다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광장이 있다면 우리의 지식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흙이 될 것이다.

김중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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