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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나는 우리가 무섭다 / 김중혁

등록 2009-09-09 19:41

김중혁 소설가
김중혁 소설가
나는 내가 공평한 사람인 줄 알았다. 열린 사람이라 생각했고, 편견도 적은 줄 알았다. 세계 어느 나라의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글로벌’한 사람인 줄 알았다. 막상 부딪쳐보니 달랐다. 이탈리아에 갔을 때 어두운 길거리에서 흑인만 만나면 움찔하곤 했다. 영국에서 거구의 백인들과 맞부딪칠 때도 그랬다. 본능일까. 학습의 결과일까. 학습의 결과였다면 끔찍하다. 본능이라고 해도 끔찍하다. 아무튼 내 몸은 그들을 피했다. 두려웠다. 그들은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르는 사람들이었고, 타인이었다. 다른 색의 피부를 보는 순간, 전혀 다른 냄새를 풍기는 사람을 만나는 순간, 나와 너의 구분이 강렬해졌다. 나와 너의 구분은 우리와 너희로 변한다. 나와 너는 그렇지 않지만 우리와 너희는 폭력적이다. 나는 우리가 무섭다.

지난 7월 버스 안에서 인종비하 발언 사건이 있었다. 성공회대 연구교수인 인도인 보노짓 후세인씨에게 “냄새 난다” “더럽다” “아랍인이냐?” 등등의 발언을 했던 한국인 남성이 약식 기소됐다. 한국인 남성은 후세인씨가 버스 안에서 떠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후세인씨는 주위를 의식하면서 조용히 이야기했으며 이번 기회로 “인종주의를 묵인해 온 사회적 인식을 환기하고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검찰의 이야기는 또 다르다. 인종차별적 발언 때문이 아니라 “관계없이 가해자의 발언이 피해자의 명예심에 상처를 준 사실이 인정돼 모욕 혐의로 기소된 것”이라고 밝혔다. 타인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는 건 개인의 문제다. 흑인을 무서워할 수도 있고, 인도인을 경멸할 수도 있고, 백인을 싫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혐오감을 드러내는 순간, 우리는 누군가를 폭력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무섭다.

글을 쓰고 있는 오늘, 남성그룹 투피엠(2PM)의 리더 재범이 그룹을 탈퇴하고 미국 시애틀행 비행기를 탔다. 연습생 시절이던 2005년과 2007년 미국 네트워킹 사이트 마이스페이스에 적은 몇 줄의 문장이 문제였다. 재미동포 출신인 재범은 “나는 한국인이 싫어, 돌아가고 싶어” “여기 사람들은 내가 랩을 잘 못하는데 잘한다고 생각해. 멍청이 같아” 등의 글을 적었고, 논란에 휩싸였다. 논란의 근원은 한국인이 한국을 무시하는 발언을 했다는 것이었다. 재범은 한국인이었을까. 17살 때까지 미국에서 살았던 재범이 한국에 와서 활동한다고 해서 한국인인 것일까.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고 해서 한국인인 것일까. 아니, 꼭 한국인이어야만 하는 것일까. 게다가 재범이 자신의 의견을 밝힌 곳은 사적인 공간이었다. 타인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는 건 개인의 문제다. 한국인을 싫어할 수도 있고, 좋아할 수도 있다. 멍청이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멋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적인 공간에서의 의견을 광장으로 끌어오는 것은 반칙이다. 광장으로 끌고 와서 그걸 공론화시키고 ‘우리’에게 어떤 여론이 있는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폭력이다. 우리는 우리의 폭력을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그를 밀어내 버렸다. 재범이 꼭 ‘우리’여야 했을까. 그가 ‘우리’ 중 한 명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욕했다는 이유로 우리는 ‘우리’로부터 재범을 밀어내 버렸다. 나는 우리가 무섭다.

나와 네가 손을 잡으면 우리가 된다. 나와 네가 손을 잡는 이유는 한 줄로 서서 더 먼 곳까지 뻗어나가기 위해서다. 원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와 네가 손을 잡아 동그란 원을 만들어버리면 다른 사람은 절대 들어올 수 없는 울이 되고 만다. 그곳에 갇히는 순간 우리는 무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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