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찬 편집인
그는 기다리던 꽃가마가 안 오면 아예 가기를 포기할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민주당이 지난 대선에서 한번 가마를 들이댄 적은 있다. 그러나 그건 밑창은 덜렁거리고, 가마꾼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이었다. 게다가 옥당 너머 영상으로가 아니라 진흙탕으로 가는 것이니, 세탁된 옷도 털어 입는 그가 그걸 탈 리는 없었다.
그런 그에게 드디어 꽃가마가 찾아왔다. 만인지상 일인지하로 직행하는 가마다. 옥좌도 넘볼 수 있다는 어음도 받았다. 물론 그도 잘 안다. 그런 가마를 타고 만인지상에 올랐던 이들의 행로를. 이수성, 이회창 전 총리 등은 지금 승천은커녕 뒷방 차지이거나 구멍가게에서 파리채나 휘두른다. 이를 잘 알면서도 승천을 꿈꾸며 꽃가마에 몸을 실은 건 그의 한계지 잘못은 아니다.
청문회를 앞두고 민주당이 벼른다. 제2의 천성관으로 만들어야 한다고도 한다. “연애는 민주당과 하고 결혼은 한나라당과 했다”는 박지원 의원의 비유는 민주당의 감정을 대변한다. 최재성 전 대변인은 ‘곡학아세’ ‘불로소득 인생’ 여부를 따져보자고 했고, 노영민 현 대변인은 ‘한복 바지에 양복 상의’라는 비유로 대통령과 총리 후보 조합을 조롱했다.
얼마나 사랑을 나눴고 마음을 주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비유법은 현란할 뿐 설득력이 없다. 불로소득 인생과 연애를 했다는 건지, 곡학아세의 노선이 같았다는 건지 알 수 없다. 혹은 생각이 비슷해서 안 된다는 건지, 달라서 안 된다는 건지도 알 수 없다. 그저 배반에 대한 응징이라는 원초적 본능만 묻어난다. 조갑제씨의 “대통령과 총리 후보가 군대 안 간 나라”라는 직설법이 돋보인다. 거기엔 비판의 근거와 이유가 명료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후 30%대로 떨어지는 데 불과 3~4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협량 탓이었다. 고대·소망교회·영남 등 그가 아는 사람이 세상의 전부였고, 자신의 하나님과 자신의 신앙만이 절대 진리였고, 제 경험과 세계관만을 통해 세상을 보려 했다. 오로지 정글 법칙을 구원의 원리로 신봉했고, 낙오자는 게으르고 미련한 종으로 여겼다. 이런 ‘협량한 엠비씨’로 말미암아 중산층·서민은 등을 돌렸다.
민주당이 그걸 모를 리 없다. 그런데 지금 좁은 속을 자랑한다. 이 대통령의 정운찬 선택은 어쩌면 그의 협량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일 수도 있다. 이에 반해 민주당은 연인이었던 사람이 등을 보였다고 온갖 비방을 떠들어댄다. 밴댕이 속이 커 보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생전에, 떠나는 사람 나무라지 않고, 돌아오는 사람 막지 않았다. 가신 중엔 한번쯤 등을 보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더군다나 그가 여당의 가짜 중도서민 노선을 진짜 중도서민 노선으로 바로잡으려 한다면 그건 응원할 일이지 복수할 일이 아니다. 정권 창출의 기회는 정파적 관점이 아니라 국민적 관점에 설 때 온다. 병역 면제 의혹, 공무원의 겸직 금지 조항 위반 의혹, 탈세 의혹, 논문 중복 게재 의혹 등을 파헤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다만 그것이 배반감, 복수심에서 나와선 안 된다는 것이다.
평소 그는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가가 시장의 잘못을 바로잡고, 경쟁에서 뒤처진 이들이 다시 뛰도록 지원하고, 교육·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사회 안전망을 강화해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고 했다. ‘고소영’ 등 이른바 여권 본류가 그를 트로이 목마로 의심하는 이유다. 물론 ‘꽃가마 도령’이 자객 노릇을 할 리 없겠지만, 그의 소신을 펼치는 일 또한 이보다 쉽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할 일은, 그런 정운찬마저 수용하지 못하는 여권의 협량과 가짜 노선을 드러내는 것이다. 가진 것이 없다면 도량이라도 넓어야 할 것 아닌가.
곽병찬 편집인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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