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정 르포작가
“아이빠”(aipa’a). 베네수엘라에서 온 산디노가 토착민 와유(Wayuu)족이 쓰는 말로 저녁인사를 건넨다. 산디노는 연극인이면서 ‘민중권력학교’ 조직·국제연대 활동가다. 열흘 전 서울 구로에서 ‘베네수엘라 혁명, 과거·현재·미래’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노동자 서민 살리기 서울남부운동본부’와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연구소’가 열었다.
산디노는 탁자와 의자를 강단 아래에 놓아 달라고 했단다. 없다면 모를까, 강단이 있는데 단상에 오르지 않고 듣는 이와 같은 위치에 앉는 강사를 본 일이 없다. 높은 곳과 낮은 곳, 내려다보는 이와 올려다보는 이, 그런 구분에 나는 익숙하고, 산디노는 저항한다. 들은 이야기를 여기서 나누고 싶다.
민중권력학교는 ‘주민평의회’ 활동가를 교육하는 곳이다. 주민평의회는 200여가구를 하나로 묶는 공동체다. 주민 스스로 마을에 필요한 걸 찾고 정부가 적극 지원해, 참여민주주의를 겪고 이룬다. “민중권력(권력이 민중에게 속하는)”을 새로 만드는 씨앗이며, “정치권력 자체가 없어지는 걸 지향”한다. 도지사, 시장, 군수가 없는 자치를 상상해 보자.
베네수엘라 정부가 실천하는 계획들엔 미시온(mision, 파견대)이 앞에 붙는다. “정부가 민중에게 더 많은 힘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가난한 사람을 위한 교육을 펼친다. 초등교육에 해당하는 로빈슨, 중등교육 리바스, 전문인력 개발을 위한 고등교육 수크레가 있다. “동네 안으로” 들어가 주민들에게 의료혜택을 주는 바리오 아덴트로, 거리 노숙인을 회복시키는 네그라 이폴리타, 토지개혁과 농촌·농민을 지원하는 사모라. 그밖에 주택, 토착민, 기아, 문화,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여러 가지가 있다. “상위 4%가 국부의 96%를 차지”하는 동안 빈곤에 내몰려 모든 기회를 빼앗긴 사람들을 위한 것이리라.
저 이름 중 로빈슨은 남미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의 스승이자 친구인 시몬 로드리게스다. 1820년대에 “하층계급 어린이” 교육과 “무상교육”에 관심을 기울였다. 리바스와 수크레는 스페인에 맞섰고, 사모라는 농민의 존엄과 자유를 주장했다. 이폴리타는 볼리바르 유모다. 이런 이름에서 산디노 말대로 베네수엘라 “문화와 전통에 알맞은 정치체제를 지향”하는 걸 엿본다. 산디노는 “민중 복지”를 탄탄히 쌓아나가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연대와 사랑에 기초한 체제”를 만들자고 모인 이들에게 권유했다.
지난 8월에 이루어진 교육법 개정 이야기도 들었다. “이전 교육은 민영화 정책이었고, 지배계급은 민중이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교육법 개정은 지배계급이 무시하고 가르치지 않은 토착민의 반제투쟁 역사와 가치들을 회복해 가르친다. 공공·무상교육이 핵심이다. 반대자들은 공산주의를 교육하려 한다고 비난하지만, 우리는 시몬 로드리게스를 공부하고 토착민 문화와 전통을 배우라고 하지 마르크스나 레닌을 공부하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미국이 베네수엘라보다 참 좋은 나라야’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살았다. 우리 문화와 자연이 더 좋은데 미국이 더 좋다고 배웠다. 이건 슬픈 역사다. 우리는 생각하는 베네수엘라 국민을 만들려고 한다.” 슬픈 역사가 남 일 같지 않다.
산디노가 노래를 부른다. 지난 시절 베네수엘라 교육과 사회는 사람들에게 “생각하지 말고/ 소리치지도 말고/ 휘파람도 불지 말고/ 침묵해야 한다”고 강요했다. 하지만 “연합한 민중은 실패하지 않는다”는 걸 믿고, “정의를 바라보면서 정의를 실천하고, 명예와 덕을 존중하는 법을 요구”(차베스)해 다른 베네수엘라를 만든다. 산디노가 “한 발짝 나서” 보라 한다.
박수정 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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