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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과경제] 중국에서 본 ‘한국 브랜드’ / 우종원

등록 2009-09-30 22:04

우종원  일본 사이타마대 교수·경제학
우종원 일본 사이타마대 교수·경제학
며칠 전 베이징에 있는 톱클래스의 대학을 방문했다. 건물 일각에 한국인 유학생 간판이 걸려 있었다. 반면 일본인 유학생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젊은 세대에서 한국인의 활력이 앞서고 있다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한편 정문 앞의 전자게시판은 일본 유수의 대학 4곳에서 교수진이 방문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한국 대학은 1곳뿐이었다. 중국에 대한 한국의 지적 관심이 일본에 뒤떨어지고 있다는 조그만 증거였다.

사회경제가 주된 테마였던 이유도 있겠지만, 회의에서 중국 학자들은 일본에 관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중 하나는 법이었다.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중국은 민법이나 상법을 정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일본 법은 좋은 참고자료다. 또 하나는 기업 시스템이었다. 일본식 경영이 빛이 바래긴 했지만 미국식 경영 또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은 양쪽을 공부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환경정책 및 환경기술이었다. 일본이 환경 선진국이라는 인식은 중국에서도 널리 퍼져 있다.

반면 회의에서 한국은 그다지 화제가 되지 않았다. 대신 휴식시간에 한국산 휴대폰이나 자동차에 관한 얘기가 자주 등장했다. 회의를 끝내면서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 학자로서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에서 한국 제품이 일본 제품에 맞서 당당히 경쟁하고 있는 것은 훌륭하다. 하지만 중국에게 한국은 과연 무엇을 배울 수 있는 나라인가.

중국이 일본에게 배우려고 하는 것은 지적 축적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본 법은 아시아에서 가장 빨리 근대화를 이룩한 과정의 산물이다. 이에 비해 우리의 축적이 부족한 것은 인정해야 한다. 특히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분야에서 스스로의 경험을 보편화해 세계에 발신하는 노력이 충분치 못했다. 하지만 국가브랜드 순위가 세계 33위라는 점이 보여주듯, 지적 자산을 포함한 우리의 소프트파워가 국내총생산(GDP) 규모(세계 13위)에 비해 지나치게 낮게 평가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무엇을 자랑할 것인가다.

올해 초 정부는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브랜드위원회라는 걸 만들었다. 위원회는 국제사회 기여 확대, 첨단기술과 제품 홍보 등을 역점 분야로 선정했다. 외국인에게 대한민국 하면 떠오르는 대표 이미지가 ‘기술력’인 점을 고려해, 우리의 첨단기술 강국 이미지를 국가브랜드 제고에 활용해 나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가 앞장서서 추진하는 사업치고는 비전과 전략이 너무 졸렬하다. 첨단기술의 이미지는 정부 이전에 기업이 이미 만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기술력’을 홍보하는 것만으로는 휴식시간에 몇몇 한국산 제품이 화제가 되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왜 우리 자신이 이룩한 진정한 성과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것인가.

일본의 긴 세월의 축적에 못지않게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점은, 짧은 시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회 구성원 다수가 좀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다이너미즘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사회 분위기도 밝고 개방적으로 변했다. 한국의 이미지 개선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한류’ 붐도, 이런 개방적이고 활력 있는 모습이 국경을 넘어 공감을 얻은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실제 일본도 민주화에 있어선 한국을 높이 평가한다. 많은 개발도상국도 경제성장과 정치·사회 발전을 균형 있게 이룩한 나라로서 한국을 모델로 삼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민주화를 자신의 지적·문화적 자산으로 삼는 데 인색한 듯하다. 산업화만이 아니라 민주화의 성과를 녹여 ‘한국 브랜드’를 만들고 이를 세계에 발신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좀더 존경받는 나라가 될 것이다.

우종원 일본 사이타마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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