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넥타이를 매고 출근한 사람이 산을 오르고 땀흘려 사업을 일구던 사람이 노숙자로 전락하던 이른바 구제금융 사태의 충격 이후 한국인들은 공포에 빠졌다. 내가 생존의 위기에 빠지면 사회도 국가도 구해주지 않는다는 공포는 ‘내 새끼의 생존’에서 더욱 극단화되어 한국인들은 내 아이 교육 문제에 올인하게 되었다. 물론 이건 모든 한국인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극소수의 지배계급은 돈으로 승부가 나는 교육 경쟁에서 전보다 더 손쉽게 일류대학을 제 아이들로 채워가고 있다. 그건 분명히 공포가 아니라 탐욕이다.
그러나 탐욕에 의해서든 공포에 의해서든 오늘 모든 한국의 부모들이 좋은 교육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선 같다. 좋은 세상은 좋은 체제나 제도뿐 아니라 좋은 인간들을 필요로 한다. 사회 성원들과 사회 체제는 서로 반영되며 순환하는 구조를 갖는다. 이를테면 독일 같은 사회에서 이명박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는가? 덜 이기적이며 돈과 물질적인 것보다는 인간적인 가치를 좀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부족한 사회는 결코 좋은 사회가 될 수 없다.
한국은 박정희 이후 50여년 동안 경제만 강조되어 이미 천박한 사회인데다, 이젠 아예 아이들을 경쟁이라는 유일한 교육관으로 키워냄으로써 더욱 천박하고 비인간적인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이게 바로 오늘 한국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다. 현존하는 그 어떤 가치도, 이명박 반대를 외치다가도 아이가 학원에 다녀왔는지 확인하는 ‘위대한 촛불광장’도 이 문제를 넘어서진 못한다. 대체 누가 이 거대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나갈 것인가? 탐욕에 젖은 지배계급? 소가 웃을 일이다. 공포에 젖어 가랑이가 찢어져도 하는 데까지 해보겠노라 이를 악문 사람들? 역시 어려운 일이다.
먼저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정신적으로나 삶의 여건으로 보나 진보적인 경향을 가진 엘리트 혹은 인텔리들일 것이다. 물론 현재 그들은 그렇지 못하다. 어떤 면에서 그들의 탐욕은 한술 더 뜬다. 보수적인 부모들은 단지 아이가 일류대 학생이 되길 바라지만, 그들은 아이가 진보적인 의식을 가진 일류대 학생이 되길 바란다. 젊어서 반체제 활동조차도 정치나 사회영역에서 주요한 경력이 되는 한국 사회에서 그들의 모습은 공포에 젖은 대개의 사람들에게 모든 진보적인 교육담론은 다 입에 발린 거짓말이라는 믿음만 키워간다.
자신이 진보적인 엘리트 혹은 인텔리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제라도 이 문제에 정직한 고민을 하길 권한다. 사회를 위해 아이를 희생시키자거나 좋은 자질을 가진 아이를 무지한 상태로 살아가게 하자는 게 아니다. 대학을 무작정 보내지 말자는 것도 아니다. 아이가 공부에 타고난 재능과 적성이 있다면 대학에 보내 좋은 학자로 성장하게 해야 할 것이다. 인민에게 봉사하는 의사가 되려 한다면 좋든 싫든 의대를 가야 할 것이다. 그런 특별한 경우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오히려 이런 경쟁체제에서 생존이나 승리가 과연 아이를 잘살게 하는 것인지 행복하게 하는 것인지를 진보적인 사람들이 먼저 재고하자는 것이다.
아이가 인간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누구보다 현명하고 성숙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위로를 주는 사람으로, 진정한 엘리트로 성장하는 데 대학이 필수적이진 않다는 걸 보여주자는 것이다. 그래서 공포에 젖은 사람들이 교육 문제를 되새기고 제 새끼만 생각하며 무한정 탐욕을 부리는 지배계급이 더 이상 당당할 수만은 없게 만듦으로써 이 거대한 악순환의 고리에 균열을 내자는 것이다.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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