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찬 편집인
전동차가 2호선 강변역을 떠날 때였다. 승객 사이로 패티김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희미하던 노래가 커져, 가사가 또렷해질 때쯤 들리는 대목은 “아 그대 곁에 잠들고 싶어라.”
노래는 오른손에 플라스틱 바구니와 흰 지팡이를 든 한 노인의 왼쪽 어깨에 걸쳐진 녹음기에서 흘러나왔다. 전동차 안은 승객으로 붐볐지만 그가 승객과 부딪히거나 그래서 노래가 끊기는 일은 없었다. 그는 달팽이 기듯이 발자국을 뗐고, 승객들은 미리미리 그를 피했다. 그가 다음 칸으로 옮기 전에 노래의 마지막 소절까지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내 가슴에 봄은 멀리 있지만/ 내 사랑 꽃이 되고 싶어라.”
왜 하필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이었을까. 동냥을 구한다면 찬송가이거나 이미자씨의 노래쯤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애상이야 그렇다 해도, 그 무늬와 빛깔은 너무 찬란하다. 승객들은 노래에 귀를 기울였지만, 그의 빈 바구니에는 눈도 주지 않았다. 그는 그저 이 노래를 들려주고 싶었을 것이라는 어쭙잖은 결론을 내린 것은 이 때문이었다. 한순간도 볼 수 없었고, 그리하여 한 번도 다가설 수 없었던 그 사랑 곁에 눕고 싶다는 그 작은 꿈을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눈은 말해주지 않을까 싶었지만, 두 눈은 검은 선글라스에 가려져 있었다.
마침 현대가의 맏며느리 상가를 거쳐 오는 길이었다. 고인은 현대판 신데렐라였다. 평범한 실향민 가정의 셋째딸로서 정몽구 회장과 황태자의 첫사랑과도 같은 연애를 하다가, 현대가의 안주인이 되었다. 혼맥까지 사업에 이용하는 세태를 혐오하던 고 정주영 회장과 가풍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겠지만, 본인의 적덕 또한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아버지 사후 형제간에 일대 충돌이 일어나긴 했지만, 안살림이 무탈했던 건 안주인의 금도와 현숙함 덕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도 운명의 손길을 피할 순 없었다. 그 앞에서 현대가의 재력도 서울아산병원의 최첨단 의술도 무력했다. 오히려 그는 남은 이들이 슬퍼할 겨를도 없이 황황히 떠나버렸다. 작은 꿈 하나 갈무리할 여유도 없었다.
가톨릭 대구대교구청 본당 뒤편엔 성직자 묘역이 있다. 입구엔 ‘Hodie mihi, cras tibi’(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라는 로마의 경구가 새겨져 있다. 주검이 산 자에게 던지는, 이처럼 강력한 겸손과 절제의 경고가 어디 있을까. 성직자들이 주검으로써 하는 마지막 강론이니 그 무게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에게 그건 경고만이 아니라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선한 자여, 다음엔 네가 그분 곁에서 평안을 누릴 것이다!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로마인의 경구와 다른 건 그 때문이다. 성냥팔이 소녀이건 재벌가의 안주인이건, 기독교 성직자이건 불교의 수좌이건 이들의 마지막 꿈은 다르지 않다. ‘그대’가 사랑이건 신이건 열반적정이건 평안이건, 그 안에 잠들고 싶은 것이다.
그 작은 꿈들을 무참히 불태워버린 용산참사 1심 재판이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다. 재판 과정에서 권력의 거짓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참회의 눈물, 반성의 울먹임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공정하더라도 재판으로는 진실을 모두 드러낼 수 없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있고픈 그 꿈의 무게를 어떻게 잴 수 있을까. 불가에선 내 밖을 비추던 불빛을 내 안으로 돌려 나 자신을 살필 것(회광반조·廻光返照)을 권한다. 자신의 죽음에 대한 묵상을 권하는 가톨릭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박원순 변호사는 최근 이 정권의 일패도지를 경고했다. 회광반조는 아니어도, 이명박 대통령은 기억해야 한다. 내일은 나에게!
곽병찬 편집인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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