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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외고를 없애려면 / 이범

등록 2009-10-25 18:53

이범 교육평론가
이범 교육평론가
내가 경기과학고 다니던 시절, 전국의 과학고 정원은 240명에 불과했다. 1980년대 학원·과외가 금지되었던 관계로 나와 동기들은 모두 자력으로 공부해서 과학고에 들어갔고, 별다른 대입 경쟁 없이 대체로 카이스트(KAIST)에 진학했다. (나는 서울대로 갔지만) 지금은 전국 과학고 정원이 1500명에 이르고, 영재고 정원만도 내가 다닌 시절 과학고 정원보다 많다. 따라서 과학고는 물론이요 영재고에서조차 일반적인 대입 경쟁을 해야 한다. 외고는? 전국 정원이 무려 8000명이다. 특목고 선발 경쟁으로 인한 사교육은 말할 것도 없고, 특목고에 들어가서도 일반고생보다 더 많은 대입 사교육비를 쓴다. 20여년 전 과학고를 다녀본 내가 보기에, 지금의 특목고 시스템은 도무지 정상이 아니다.

나는 외고를 졸업해서 어문계열로 진출해야만 한다고 보지 않는다. 수학·과학은 ‘도구’로서의 비중과 ‘지식’으로서의 비중이 비교적 동등한 반면, 외국어는 ‘도구’로서의 비중이 크다. 따라서 외국어라는 도구를 장착하고 다양한 영역에 진출하는 것이 외고의 설립 취지에 걸맞은 것일 수도 있다. 문제는 외국어고를 옹호하는 논리가 “다양한 교육, 수월성 교육을 위해서”라는 점이다. 일견 설득력 있다. 하지만 이 말은 아주 무서운 전제를 깔고 있다. “일반 학교에서는 다양한 교육, 수월성 교육을 할 수 없다” 내지는 “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 말이다.

나는 정두언 의원의 안에 찬성한다. 외고를 특성화고로 전환하고 추첨으로 학생을 선발한다면, 고입 사교육은 크게 줄어든다. 물론 이것이 실현되려면 대통령의 결단과 의지가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결단하라.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적잖이 오를 것이다. 강남 학부모들도 ‘내 아이가 외고 갈 가능성을 낮추는’ 제도에는 반대하지만, ‘모든 외고가 없어지는’ 제도에는 찬성한다. 왜냐하면 고입과 대입을 연달아 거쳐야 하는 현행 시스템은 너무나 피곤하기 때문이다. 다만 외국 대학으로 진학시키려는 학부모들은 반대할 텐데, 이것은 일반고에서도 외국 대학 진학이 가능함을 보여주고(현재 강남의 일반고에서는 이미 외국 대학 진학 비율이 1% 이상이다) 이를 안내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면 된다.

그런데 내친김에 한 가지 더 하자. ‘다양성, 수월성을 위해 특별한 학교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원천적으로 예방하자는 것이다. 이러려면 일반고에 학점제, 절대평가제, 부분적인 온라인 학점취득제를 도입하면 된다. 핀란드의 경우 필수과목 45학점, 선택과목 30학점을 채우면 고교 졸업이다. 미국에서도 고등학교는 학점제에 가깝다.

학점제로 전환하면 현행 외고보다 더 다양한 교육이 가능하다. 예컨대 자기 학교에 프랑스어 교사가 없어도 인근 학교에서 또는 온라인으로 학점을 취득할 수도 있다. 또한 자신의 적성이나 대학에서의 전공을 탐색할 수 있다. 어떤 과목을 수강하다가 ‘땡기면’ 다음 학기에 심화 과목이나 인접 과목을 수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통합하면 금상첨화이다. 이렇게 되면 고도로 학력지향적인 학생·학부모의 요구도 일반 학교에서 수용할 수 있다. 이들은 중-고 과정을 5년이나 4년에 마치면 된다.

이런 시스템으로 전환하려면 준비 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2년간 제도를 준비하면서 학교 교실과 도서관 등 하드웨어를 확충하여 건설경기를 부양(!)하고, 이후 3년간 시범운영하면서 교원을 충원하면 된다. 그러면 외고는 영영 폐지가 가능하고, 과학고·영재고는 탐구력이 강한 학생을 추천받아 학기나 학년 단위로 위탁교육하는 탐구 중심 교육기관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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