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우 기자
미국 정부기구인 연구진실성사무국(ORI)의 웹사이트(ori.hhs.gov)에 있는 ‘부정 사례 요약’엔 현실에서 벌어지는 여러 연구부정이 보고돼 있다. 부정행위 조사 결과와 혐의자의 시인, 그리고 이에 따른 과제연구 참여 제한 등 처분이 부정행위자의 실명과 함께 공시됐다. 목록만 보면 미국의 연구 현장은 부정으로 얼룩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처리 과정은 오히려 연구진실성에 대한 미국 과학계의 의지를 느끼게 해준다. 의심이 제기될 때 어떻게 시시비비를 가리며 어떻게 처리하는지 그 절차와 방법, 결과를 언제나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지난주 우리 사회에 크나큰 경종을 울렸던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연구팀의 <사이언스> 논문 조작 사건과 관련해 서울중앙지법의 1심 선고가 나왔다. 선고를 지켜보던 한 교수는 연구윤리가 왜 과학자한테 중요한지 설명하다가 이런 말을 전했다. “연구자들은 자기 연구를 서둘러 완성하고 싶어 하지만, 대개 데이터가 몇 퍼센트가량 부족할 때가 많아요. 부족한 데이터를 만들어 넣어 논문을 완성하면 그뿐이죠. 하지만 수많은 정직한 연구자들이 그 몇 퍼센트 때문에 오늘도 연구에 매달립니다. 이런 정직한 연구자와 데이터를 조작하는 연구자가 겨룰 때 누가 이기겠습니까?”
과학은 정직한 연구자들이 경쟁하며 신뢰를 쌓아온 진실성 규칙의 게임이다. 규칙이 흐트러지면 게임 자체의 신뢰는 무너진다. 이런 점에서 연구윤리는 성가신 의무가 아니라 정직한 보상을 보장해주는 진실성 게임의 최소 요체인 셈이다. 2005년 이후에도 논문 조작·표절 같은 부정들이 우리 과학계에서 심심찮게 이어지고 있다. 의심은 커지나 처리는 더딘 경우도 있다. 연구윤리를 대학과 연구기관에만 다 떠넘기는 게 아니라, ‘정직한 게임’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관리하는 투명한 정부기구의 역할도 필요한 때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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