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기자
충무공이 쓴 <난중일기>에서 읽는 이의 가슴을 가장 저리게 하는 대목은 아마도 정유년(1597년) 10월14일 셋째 아들 면의 전사 소식을 들은 날의 기록일 것이다. “나도 모르게 자제력을 잃고 목놓아 통곡, 통곡하였다.” ‘통곡’이란 말을 두 번이나 쓴 이 대목에서, 우리는 영웅이기 전에 한 인간인 그와 함께 깊이 슬픔을 나눈다.
버락 오바마는 지난해 연말 대통령 선거일을 하루 앞두고, 자신을 키워준 백인 외할머니의 부음을 대중에게 전하면서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비록 만져보진 않았지만, 그 눈물은 정말 뜨거웠을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국가정보원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했다가 국가한테서 소송을 당한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는 지난 9월17일 기자회견에서 “어쩌다가 이런 나라가 됐느냐”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권력을 멀리하고, 오로지 한길 시민운동에 매진해온 그의 긴 탄식도 많은 이들을 아프게 했다.
‘큰사람’이 흘리는 눈물은 그만큼 진하다. 물론 연출 혐의를 받는 때도 있다. 1987년 5월 미국 해군의 스타크함이 이라크의 미사일에 피격돼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장례식장에서 스타크함을 비행기라고 부르는 실수를 했지만, 곧 잊혀졌다. 그가 눈물이 가득 고인 얼굴로 아버지를 잃은 어린 소녀를 껴안아주는 모습이 전국에 방송되면서 레이건은 영웅이 됐다. 그의 그런 모습은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그는 할리우드의 영화배우 출신이었다.
정운찬 총리가 취임 뒤 용산참사 희생자 유가족을 만나 흘렸던 눈물을 놓고 여러 말이 나온다. 그날 보였던 사태 해결 의지와 달리, 여태껏 이렇다 할 진전이 없는 까닭이다. 박원순 상임이사는 기자회견 때의 눈물에 대해 나중에 “눈물을 흘린 게 아니에요. 나이가 들면 왜 눈가가 축축해지기도 하잖아요”라고 설명했다. 정 총리의 눈물도 그랬던가?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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