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성 금융팀장
“주식투자자가 많아진다는 건 곧 공화당 지지자가 늘어난다는 말과 같다.” 몇 해 전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칼럼 속 한 대목이다.
주식투자자란 말 그대로 ‘가진 자’이고, 따라서 애초부터 보수 성향이다? 절반은 ‘맞는 말’일 수 있다. 중요한 건 나머지 절반의 진실이다. 경제 구조의 무게중심이 금융시장 쪽으로 빠르게 옮겨감에 따라, 전통적인 의미에서 사회적 약자로 치부되던 사람들, 이른바 ‘못 가진 자’ 중에서도 소득의 일부를 투자행위를 통해 벌어들이는 투자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기존 질서에 비판적이고 사회 변화를 외치던 이들의 성향이 ‘변화 거부형’, ‘현실 긍정형’으로 차츰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을 가늠해볼 수 있는 사례는 많다.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인 조그비인터내셔널 조사 자료를 보면, ‘투자자’ 가운데 지난 대선에서 공화당의 매케인 후보를 지지한 사람은 57%로, ‘비투자자’(39%)보다 훨씬 많았다. 2004년 대선에서도 부시 후보(공화당)에게 표를 던진 ‘비투자자’ 노조원은 36%였지만, ‘투자자’ 노조원의 비중은 57%나 됐다.
금융시장의 공용어인 ‘숫자’에 울고 웃는 사람들이 늘어만 간다. 이런 현실을 두고, 금융시장이 개인의 운명을 갈수록 옥죈다며 한탄하는 데 그칠 일만은 아니다. 중요한 건, 이런 흐름의 밑바닥에서 오랜 세월 동안 단단했던 사회정치적 지형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음에 눈뜨는 일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계층·계급과 성, 인종, 지역 등 사회 구성원의 존재기반과 의식구조를 갈라놓았던 기준들은 서서히 사라지고, 투자자냐 아니냐라는 새로운 ‘편가르기’가 그 자리를 꿰찰 여지가 커진다는 얘기다.
아직은 남의 얘기라고 제쳐놓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 평균 가계소득 중 투자소득의 비중은 임금소득에 견주면 사실 미미한 수준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금융자산보다는 부동산 투자를 훨씬 선호하는 것 또한 분명하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 역시 분명 물밑에서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국내 주식투자(직접투자) 인구는 462만명. 경제활동인구의 19.0%에 이른다. 지난 9월말 현재 적립식 펀드 계좌 수는 1235만개. 어림잡아 가구당 한 개꼴이다. 2011년께 90조원 규모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퇴직연금 시장은 우리 사회를 ‘투자자 사회’로 한 발짝 가까이 이끌고 갈 공산이 크다. 그간 노동자와 투자자란 두 단어가 ‘또는’(or)으로 묶이는, 서로 양립하기 어려운 조합이었다면, 이제 노동자이면서 투자자이기도 한, ‘그리고’(and)의 시대가 열리는 셈이다.
이쯤에서,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투자자 운동’이라는 공간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시작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오랜 자본주의 역사에서 노동운동과 여성운동, 지역운동은 각각 노동자, 여성, 지역이라는 배타적 이해만을 좇는 데서 벗어남으로써 사회운동으로서의 시민권을 획득했다. 21세기 세상은 개별 투자자의 단기적 투자이익에만 매몰되지 않는, ‘투자자 운동’을 목말라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때마침 최근 국내 일부 노동진영을 중심으로 사회운동의 한 방편으로 ‘노동자 펀드’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경영자의 전횡을 막는 경영감시 활동을 벌이거나, 공공적 성격이 강한 프로젝트에 투자자금이 몰리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등의 가능성이 입에 오르내린다. 바야흐로 금융시장은 패러다임이 충돌하는 격전장이자, 새로운 질서가 움트는 실험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현란한 ‘숫자’ 뒤편에 가려진 ‘거대한 전환’에 눈을 치켜떠야 하는 이유다.
최우성 금융팀장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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