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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유머와 망언 / 정남구

등록 2009-11-23 18:03

정남구 기자
정남구 기자




중국인들은 춘추전국시대 월나라 미인으로 유명한 서시를 ‘침어’(沈魚)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일렀다. 서시가 강변을 거닐 때 투명한 강물에 모습이 비치자 물고기들이 넋을 잃고 ‘강바닥으로 가라앉았’을 만큼 용모가 빼어났다는 것이다. 한나라 때 미녀 왕소군은 ‘낙안’(落雁)이라고 했다. 그가 악기를 연주하는 것을 본 기러기들이 그 아름다움에 취해 ‘날갯짓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땅으로 떨어졌다’는 이야기에서 나왔다. 어지간한 무공이면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쯤은 쉽게 해내는 중국인들의 황당한 거짓말은 익살스럽다.

똑같은 거짓말이 ‘망언’이 되는 경우가 있다. 침략의 역사와 책임을 천연덕스럽게 부정하는 일본 위정자들의 발언이 그런 예다. 1975년 10월 일왕 히로히토는 미국을 방문했을 때 기자회견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전쟁 후 천황이 마땅히 졌어야 할 책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는 침략전쟁 당시 군부의 허수아비가 아니라, 군 통수권자로서 주도적으로 의사 결정을 이끌었다. 그런데도 그 책임을 교묘히 벗어나 있던 히로히토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문학 방면에 대해 공부한 적이 없어 말재간이 부족해 잘 모르므로, 대답할 수 없습니다.” 도대체 그 대답을 하는 데 문학적 조예가 왜 필요한가? 그의 대답이 망언인 것은 피해자들을 멸시했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 예산심의를 둘러싸고 요즘 국회가 시끄럽다. 사업 세부 내역을 구체적으로 내놓으라는 야당의 요구에 정부는 “깨알같이 (내역을) 적어냈는데 도대체 왜 심의를 못 하느냐”고 큰소리를 쳤다. 대충 넘어가자는 속셈을 모를 사람은 없지만, 수계별로 사업 총액만 죽 나열한 자료를 두고 ‘깨알’ 운운한 것은 익살이 아니라, 국민 모독이었다. 진짜 깨알 크기의 글씨로 자료를 써내기라도 했으면, 잠깐 웃을 수라도 있었을 텐데.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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