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시인
얼마 전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제자 녀석 하나가 전화를 걸어왔다. 과 동기의 소개로 3개월을 꼬박 어떤 사무실에서 일했는데 올해가 다 가도록 밀린 월급을 안 주더라는 하소연이었다. 왜 가만있었어, 고발한다고 해. 그게 아니라요 선생님, 자꾸만 제 자취방 주소를 안다면서 집에서 얘기하재요. 업무라고 해야 전화를 받고 복사를 하고 팩스를 넣고 책상을 닦고 컵을 씻는 일 정도였으니 월급이 과할 턱이 없을 터, 애라서 만만하게 보고 떼어먹을 심사인가 싶어 사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돈 생기면 준다니까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 다짜고짜 반말이었다. 귓불까지 빨갛게 달아오른 나는 바로 법적 운운했다. 수화기 너머 사장은 말했다. 야, 너 내가 누군지나 알고 하는 소리야?
그로부터 며칠 뒤 단골 미용실에 갔다. 헤어디자이너와 앞머리를 자르네 마네 소소한 얘깃거리로 커피 한잔 나누는데 느닷없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중년여성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대체 시끄러워서 책을 읽을 수가 없잖아. 뭐야, 이 교양 없는 분위기는. 헤어디자이너는 울며 빌기 시작했고 머쓱해진 나 역시 눈치만 살살 보고 있는데 생각할수록 슬슬 화가 치밀어오르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저나 나나 손님이 아닌가. 저기요, 저도 머리하러 온 사람인데요, 너무 오버하시는 거 아닌가요. 잡지책을 신경질적으로 넘겨대던 중년여성이 급기야 점장을 오라 가라 불러세웠다. 여기 시시티브이(CCTV) 있지? 가서 돌려보고 쟤 잘라. 귓불까지 빨갛게 달아오른 나는 바로 예의 없음에 대해 운운했다. 잡지책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중년여성은 말했다. 이봐, 당신 내가 누군지나 알고 하는 소리야?
14년 전 겨울이 문득 생각났다. 서울에서 본고사를 치르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였다. 자리가 없어 양 손잡이를 잡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누군가 툭툭 나를 쳤다. 베레모를 쓴 채 앞좌석에 앉아 있던 남자였다. 그는 펼쳐 읽고 있던 신문지 위에 번져가는 몇 방울의 물무늬를 가리켰다. 그제야 나는 짐칸 위에 올려두었던 내 책가방 속 보온병을 떠올렸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서둘러 가방을 어깨에 둘러멨다. 옷에 떨어지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어. 이거 최고급 무스탕이라고. 귓불까지 빨갛게 달아오른 나는 바로 주의하지 못함에 대해 사과했다. 고3인 것 같아 내가 참은 거야. 근데 어느 학교 쳤어? 그냥 뭐. 그러게 어디 쳤냐고? 제가 그걸 꼭 말씀드려야 하나요? 어라, 학생 내가 누군지나 알고 하는 소리야?
아니요, 초면에 제가 그걸 알면 무당이게요. 끝끝내 그렇게 대꾸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침묵 속에 베레모가 말했다. 나 ○○대학교에 있어. 네? 나, 교수라고. 아하, 교수! 순간 나는 “어쩌라고요!”라는 유행어가 왜 지금껏 우리에게 큰 웃음을 주는지 잘 알 것만 같았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소설 또한 왜 베스트셀러였는지도 말이다. 그렇다. 주제파악은 그렇게도 어려운 것이다. 이해한다. 그들은 정말이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묻고 또 묻고 다녔을 테다.
미용실에서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던 중년여성에게는 영양파마 1회 무료사용권이 제공되었다. 커트하러 갔다가 엉겁결에 파마까지 해버렸지만 실적을 채운 헤어디자이너의 되찾은 웃음에 후회는 없다. 월급 떼어먹으려던 사장에게는 변호사인 친구가 전화를 걸어줬다. 체불임금은 다음날 바로 입금됐다. 그 돈으로 나는 제자 녀석과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따지고 보면 나도 이렇게 한통속이다. 변명이 길었다.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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