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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이주호, 제2의 강만수 되나? / 이범

등록 2009-12-06 21:40

이범 교육평론가
이범 교육평론가
입학사정관제의 좋은 점은 딱 두가지다. 첫째, 학교에서 동아리활동 등의 각종 특별활동이 활성화될 것이다. 올해 내가 만나본 고교 교장들은 거의 예외없이 ‘내년부터 학생들의 특별활동에 신경쓰겠다’고 말했다. 입학사정관제가 확대되면서 자기소개서와 학생부 비교과영역에 적힐 각종 활동 내용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둘째, 학생과 학부모들로 하여금 적성·진로·전공에 대하여 일찍부터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의 윤곽을 중학교 무렵부터 잡아놓은 학생들은 몇년에 걸쳐 학과성적·비교과영역·독서이력 등을 일관성 있게 관리할 수 있을 터이니, 고3 막판에야 전공을 정하여 이것들이 제각기 따로 노는 학생보다 유리할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대교협 또한 지난 5월에 입학사정관제하에서 ‘전공적합성’을 주요한 선발기준으로 삼을 것임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입학사정관제는 장점을 압도하고도 남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에서만 채택하고 있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교육비 절감에 매우 불리하다. 입학사정관제가 사교육비를 줄여줄 것이라는 얘기는 터무니없다. 미국의 입학사정관들도 사교육 문제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는데, 컨설팅 서비스와 대학입시(SAT·AP)학원이 갈수록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사교육을 일으키는 요인을 중요한 것부터 차례로 나열하면 다음 세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대학서열화와 학벌주의로 인한 ‘선발경쟁’이고, 둘째는 학교교육의 책무성과 효율성 부족, 셋째는 전형요소의 난이도·과목수·복합성 등 기술적 요인들이다. 기술적 요인 가운데 여러가지 전형요소를 복합적으로 요구할수록 사교육이 커진다는 것은 2년 전 ‘죽음의 트라이앵글’ 사태를 통해 입증된 바 있다. 그런데 입학사정관제에서 요구하는 전형요소는 내신성적, 수능성적, 각종 자필서류, 면접, 논술 등 삼각형(트라이앵글)을 넘어서 오각형 내지 육각형에 달한다.

특히 강력한 뇌관이 ‘학생부 비교과영역’이다. 여기에는 학생회 활동이나 봉사활동 경력뿐만 아니라 공인 외국어시험 점수나 각종 경시대회 입상실적 등이 모두 적힌다. 따라서 대학에서는 토플 성적표를 별도로 제출하도록 요구하지 않아도 지원자가 토플을 치렀는지 여부와 점수를 알 수 있다. 이미 고려대가 이런 방식으로 지난해 수시 일반전형에서 토플과 경시대회 입상실적을 은밀하게 반영했다. 이제 학생들은 끝간데없는 스펙경쟁에 내몰리게 되었다. 나도 강연회에서 ‘문과생으로서 수시전형에서 서울지역 유명 사립대에 지원하려면 토플을 챙기라’는 식으로 얘기한다. 얼마 전 외고 교장들이 입학사정관제를 외고입시 개선책이랍시고 내놓았는데, 이게 어떤 꼼수를 내장하고 있는지는 알아서들 상상해 보시라.

얼마 전에 책을 출간한 기념으로 강연을 하다가, 강연장을 메운 수백명의 학부모들에게 물었다. “입학사정관제로 사교육비가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하는 분 손들어 보세요.” 한명도 없었다. “사교육비가 늘어날 것이라고 보는 분”에 절반 이상이 손을 들었다. 입시제도에 대하여 가장 발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하는 강남 학부모들은 이미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판정을 끝냈다. 미국발 금융위기 앞에서 ‘시장의 불신’이라는 난관에 봉착했던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처럼, 입학사정관제를 진두지휘해온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차관 또한 차가운 불신의 벽에 직면해 있다. 학생부 비교과영역과 관련하여 투명한 사회적 규칙이 수립되어야 함을 명심하고, 강력하고 일관적인 조처를 통해 신뢰를 회복하기 바란다.

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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