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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대통령은 교육에 뭐가 불만일까 / 박찬수

등록 2009-12-23 22:02

박찬수  부국장
박찬수 부국장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 교육이 굉장히 좋은 줄 알고 그러는데, 나는 사실 불만이 많다.” 그저께 이명박 대통령이 교육분야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한 얘기다.

서울을 찾은 오바마가 한국 교육의 강점을 묻기에 부모의 교육열 등을 설명했고, 감명받은 그가 미국에 돌아가선 한국 교육을 칭찬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오바마는 여러 차례 이 대통령과의 대화를 예로 들면서 미국 교육의 변화를 촉구했다.

오바마가 한국 교육을 모범사례로 든 데 대해선 미국에서도 논란이 적지 않다. 미국의 인기있는 정치사이트 <허핑턴포스트>엔 “대다수 한국 학생들은 연습문제를 풀고, 필기하고, 각종 시험을 통과하는 데만 신경을 쓴다. (오바마식 개혁으로) 우리 아이들이 시험의 전문가가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게 차세대 일자리의 해외 유출을 막지는 못한다”는 어느 교육학자의 글이 올라와 있다. 오바마에게 설명해주면서 “한편으론 속으로 미안했다”는 이 대통령의 심정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오바마는 한국 교육의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를 구체적으로 얘기했다. “미국 초등학생들의 연간 수업일수는 한국보다 한달 이상 적다. 내 가족도 반대하겠지만, 이건 21세기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미국 학생들은 수학과 과학에서 뒤처져 있다”고 했다. 논란을 불러오긴 했지만, 적어도 그의 발언은 명료하다. 미국 공교육에 경쟁을 도입해 학생들에게 더 많은 공부를 시키겠다는 것이다. 뭘 고치고 싶은지, 어떤 방향으로 고칠 생각인지 분명하다. 그는 “(자신의 지지기반인) 민주당원들의 다수가 반대하겠지만…”이란 말까지 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 발언에서 우리 교육의 어떤 점이 불만이란 건지 알아채긴 쉽지 않다. 언론은 ‘높은 사교육비’가 대통령의 주된 불만사항일 거라고 해석하지만, 그런 해석이 옳은건지 알 도리가 없다. 요즘 학부모들 사이엔 입학사정관제에 대비한 ‘스펙 만들기’ 열풍이 불고 있다. 사교육비가 문제라면서, 그걸 더 확대할 가능성이 높은 입학사정관제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하는 건 또 뭘까.

대통령의 참뜻이, ‘사교육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개인의 잠재력을 평가할 수 있는 입학사정관제의 정착’에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목표는 학부모에겐 신기루에 가깝다. 이 대통령은 ‘경쟁과 자율’을 중시한다고 말했다. 또 중산층·서민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사교육비를 잡아야 한다는 소신도 갖고 있다. 현실에서 두가지 목표는 손쉽게 충돌한다.

몇달 전 정부의 핵심 인사로부터 “외고를 폐지하거나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교육비를 잡을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교육비를 잡는 게 친서민 정책의 핵심이라는 말도 들었다. 대통령의 의지가 담겨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뒤 한나라당에선 외고 폐지론이 분출했지만, 결과는 입시제도만 손질하는 것으로 끝났다. 외고를 그냥 둔 것보다, 이 정부의 정책방향이 뭔지 종잡을 수 없는 게 더 문제다.

대통령이 어떤 정책에 불만을 갖고 있다면, 그 정책은 바뀐다고 보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우리 교육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하는 대통령 얘기를 들으면서도 “앞으로 도대체 뭐가 바뀐다는 거지?”라고 자문해야 한다면, 그건 너무 씁쓸하다. 난마처럼 얽힌 교육문제를 일거에 해결해달라는 게 아니다. 그걸 기대하는 국민은 없다. 다만, 대통령 생각을 정확히 알고 싶을 뿐이다. 어떤 방향으로 가려는 건지 알기 쉽게 얘기해달라는 것이다. 엇갈리는 정책 속에 부담만 고스란히 학부모에게 지우는 일은 말아달라는 거다.

박찬수 부국장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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