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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곽병찬 칼럼] 악의·억압의 역설, 해리와 덕만

등록 2009-12-27 22:10

곽병찬 편집인
곽병찬 편집인
‘빵꾸똥꾸’가 폭력적 언어라고? 그래서 방송에선 사용해선 안 된다고? 그게 이 정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수준이다.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의 언사에 이르면 정권의 정신상태까지도 의심스러워진다. 그는 열살짜리 해리를 두고 ‘정신분열증에 걸린… 비정상적인 아이’ 운운했다. 전체주의 시절 옛소련이 사회주의 정신 재무장을 목적으로 운영했던 수용소 군도의 책임자 입에서나 나올 소리다. 그런 도덕군자들이 불륜, 엽기, 변태 등 막장 드라마에 대해 침묵하는 건 왜일까.

민심을 저버린 못난 정권이 막판에 흔히 동원하는 수단이 맹목적 도덕과 이념을 앞세운 군기잡기다. 지금 코흘리개에게까지 가하는 정권 이데올로그들의 행태는 그 전형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들의 이런 악의에 찬 억압은 해리와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을 성층권으로 띄웠고, 빵꾸똥꾸를 도덕적 위선과 야비한 폭력을 풍자하고 조롱하는 똥침으로 만들어버렸다.

50대 권력자들이 떼거리로 열살짜리의 손목을 비틀고, 그러다 자신이 뒤집히는 그런 종류의 사건은 흔하지 않다. 그러나 비틀기-뒤집기의 반전과 역설은 정치권 주변에서 흔히 발견된다. 최근 막을 내린 <선덕여왕>에서 덕만과 미실도 그런 경우였다. 덕만을 제거하기 위한 미실의 집요한 노력은 드라마 안에서 덕만을 유일무이한 정치적 대안으로 세웠고, 현실 속에선 시청자의 연민과 사랑을 독차지하게 했다. 정치인 디제이(김대중)와 와이에스(김영삼)를 차세대 주자로 발돋움하게 한 것은 박정희였다. 박정희는 집요한 탄압과 견제로 이들이 40대에 일찌감치 ‘양김’시대를 열도록 했다. 이런 반전엔 한가지 공통된 조건이 있었다. 가해자의 악의와 몰상식이다. 야만적인 폭력과 억압, 비열한 음모와 공작, 조폭적 공권력 행사, 비열한 사생활 침해 등이 그것이다.

올핸 권력형 재해가 유례없이 많았다. 돌아보기 끔찍할 정도였다. 용산참사와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와 같은 참극은 제쳐놓더라도 김윤수·김정헌·황지우·진중권 등 문화계의 원로와 중견들이 정권의 칼부림에 희생됐고, 윤도현·김제동 등 양식 있는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쫓겨났고, 무수한 방송인이 잘렸다. 물론 희생된 이들은 대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억압에 밀려 날개를 접지 않을 순 없었다.

오히려 더 비상한 경우도 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다. 이른바 ‘친이’ 쪽의 집요한 무시와 배제, 억압 속에서 그는 위축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고한 입지를 구축했다. 무게감은 더욱 커졌고, 약점이었던 카리스마까지 갖췄다. 드라마 <선덕여왕> 흥행코드를 현실의 박 전 대표와 이명박 대통령의 관계에서 찾을 정도였다. 주류의 압박이 강해질수록, 박 전 대표의 저항은 더욱 돋보였고, 그에 대한 성원은 차돌처럼 굳어졌다. 이제 여당은 물론 야당까지도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게 됐다.

미당이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라고 고백했다면, 박 전 대표는 “날 키운 건 8할이 엠비”라고 해야 하겠다. 칠산 앞바다에서 곰소만을 거쳐 사시장철 밀려드는 바람이 미당의 이마 위에 “피 섞인 시의 이슬”을 얹었다면, 주류 쪽의 거친 바람은 그를 정상으로 밀어올렸다. 아버지 박정희의 후광이나 부단한 러브콜로 그의 존재감을 높여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구실은 나머지 2할이다. 이제 유신공주라느니, 수첩공주라느니 하는 빈정거림은 종적도 없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지금 의도와 달리 여러 사람을 단련시키고 있다. 박근혜 외에도 박원순·한명숙 등. 대타 없는 야당으로선 내심 반길 일이다. 그러나 그 자신과 우리 사회를 수렁 속 더 깊이 빠뜨리면서까지 그럴 일은 아니다.

곽병찬 편집인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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