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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대통령의 무한한 ‘언론 신뢰’ / 성한표

등록 2010-01-13 21:46

성한표  언론인
성한표 언론인
정부 부처 일부의 세종시 이전 백지화라는 이명박 정부 계획을 반대하는 의원들이 찬성하는 의원보다 더 많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반대 의원들과의 협상을 통한 양보를 거부하고 ‘국가 백년대계’를 주장하며 마이웨이로 치닫고 있다. 이 대통령의 전략은 국민여론, 특히 충청도민의 여론을 정부의 새 계획에 대한 찬성 쪽으로 돌린 후 이를 통해 의원들을 압박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국민 여론을 가장 열심히 경청하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이다. 이들의 의회활동은 특히 지역구 유권자의 뜻, 곧 지역 여론에 가장 가까이 있다. 이런 의원들의 다수가 정부 부처 이전 계획의 백지화에 부정적이라면 의원들의 태도를 바꾸는 ‘설득’ 작업은 이들과의 협상을 통한 양보가 최선이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뭘 믿고 협상 없는 의원 설득, 다시 말하면 여론을 변화시키고, 이를 통해 의원들을 압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을까? 언론에 대한 그의 무한한 ‘신뢰’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정운찬 총리가 발표한 세종시 새 계획을 보도한 지난 12일 아침신문들을 보면 언론에 대한 이 대통령의 ‘신뢰’가 근거 없는 맹신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조선일보>의 보도와 논평에서 전형적인 사례를 본다. 조선은 새 계획에 대해 충청도민들 가운데 찬반양론이 있다고 보도했다. 100% 찬성이나 반대가 아닌 경우 언제든지 찬반양론을 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이것은 의도적인 편집에 해당된다.

새 계획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박근혜 전 대표가 주장하는 ‘원안+α(알파)’ 중 ‘+α’에 필요한 조처들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는 쐐기를 박기도 했다. 법안이 통과하지 못하면 발표된 새 계획은 ‘사실상 원천무효’가 되어 세종시는 ‘9부2처2청 이전’을 골자로 하는 원안으로 돌아가게 되고, ‘기존법에 따라 자족용지 비율이 6.7%로 제한돼서’ 삼성·한화 등 기업 유치가 무산된다는 주장이다. 조선은 협상의 여지를 자의적으로 봉쇄하고, ‘수정안’이냐 ‘원안’이냐 중 양자택일하는 길밖에 없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폈다.

이날 사설의 결론은 박 전 대표와 야당에 대한 협박성 충고였다. 박 전 대표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자신의 정치생명에 중대한 기로라는 자세로 재삼 숙고”하기를, 야당에는 “세종시가 식물도시가 될 경우 야당의 무능, 무모를 증거하는 기념비가 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충고한 것이다. 이와 같은 논조는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를 비롯한 다른 언론 대부분에서도 공통적으로 볼 수 있다.

일부 신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은 언론이 새 계획 찬성 또는 불가피 쪽으로 한목소리를 낼 것이라는 이 대통령의 믿음에 지금까지는 화답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한목소리를 내는 언론이 결국 충청도민과 국민의 여론을 자기 쪽으로 돌려세울 것이며, 이에 따라 의원들의 태도도 바뀔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사회는 지금 세종시 문제를 둘러싼 대토론에 들어가 있다. 이 토론을 통해 어떤 결론을 끌어낼 것인지는 토론의 맥을 쥐고 있는 언론에 달렸다. 한두 신문이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 토론의 결론은 영향력이 강한 신문과 방송들이 이 대통령이 보이는 신뢰에 앞으로 어떤 응답을 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이들이 이 대통령의 ‘우군’이 될 것인지, 아니면 정부의 일방적인 홍보를 넘어 새 계획의 진짜 모습을 들춰내는 언론이 될 것인지에 세종시와 충청도뿐만 아니라 나라의 앞날이 달려 있다.

성한표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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