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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한나라당의 이념은 힘이 세다 / 이범

등록 2010-01-17 21:16

이범 교육평론가
이범 교육평론가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 확실시되면서 사교육 업계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특목고가 대폭 늘어나고 자율형사립고 100개가 설립되어 성적순으로 학생을 선발하면 사교육 시장이 엄청나게 커질 것이라고 전망한 것이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특목고 설립은 주춤했고, 자율형사립고의 학생선발 방식은 추첨으로 귀결되었다. 외국계 자본까지 끌어들여 엄청난 선행투자를 해놓은 고입 사교육 업계는 난감한 처지가 되어버렸다.

지난해 하반기 내내 시끄러웠던 외고 문제를 다시 반추해 보자. 알다시피 고교 평준화 지역의 일반고와 자율형사립고는 무작위 배정이나 추첨으로 입학 여부가 결정된다. 그런데 유독 특목고에만 성적순 선발을 허용하여 고학력자를 독점하도록 한다면, 다른 학교들과 특목고 사이의 경쟁은 애초부터 ‘게임이 안 되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이것은 시장주의자에게 상당히 심각한 문제이다. 경쟁을 통해 효율을 높이려면 무엇보다 ‘공정경쟁’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학교에 성적순 선발을 허용하는 방식의 공정경쟁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입시지옥과 사교육비 문제가 최악으로 치달을 것이므로 차마 이러한 대안을 택하기는 어렵다. 결국 자사고든 외고든 추첨제로 가는 것이 논리적이다.

일각에서는 외고의 학생선발을 추첨제로 바꿔야 한다던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의 주장을 ‘서울시장을 노리는 고도의 정치쇼’로 해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시각으로는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이 대부분 정 의원에게 동조했다는 사실까지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들은 특목고가 ‘성적순 선발’이라는 예외적 특혜를 누리려면 그 특혜의 정도에 상응하는 사회적 순기능을 수행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한데, 외고의 경우 이런 조건에 한참 미달하기 때문에 공정경쟁의 원리에 따라 외고도 추첨선발로 바꿔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비록 행정부와의 힘겨루기에서 밀려 다소 기형적인 결론으로 귀결되기는 했지만, 정두언 의원을 필두로 한나라당 의원들이 상당히 단호하게 추첨선발로의 전환을 주장한 것은 인상적이었다.

취업후 등록금 상환제 역시 ‘공정경쟁’이라는 키워드로 이해 가능하다. 등록금 걱정 없는 학생과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학생 사이에 최소한의 ‘공정’경쟁이 가능하도록 하려면, 정부재정을 투입하여 등록금 자체를 인하하거나 아니면 등록금 후불제를 도입해야 한다. 그런데 등록금 인하는 필연적으로 정부재정의 증가와 증세를 요구하는데다, 4대강이라는 ‘예산 블랙홀’과 동시에 추진하기엔 부담이 너무 크다. 정부·여당이 등록금 후불제로 기운 것은 논리적인 귀결이었다.

참여정부에서 교육부총리를 지낸 김진표 의원은 ‘한나라당이 야당일 때에는 외고를 옹호하다가 돌연 표변했다’며 이중성을 공격하였다. 이러한 지적 자체는 맞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이 의회와 행정부를 장악하던 시절에, 현재 한나라당의 절반 수준이라도 진정성과 집요함을 가지고 외고 문제나 등록금 문제에 손댄 적이 있던가? 내 기억엔 없다. 그렇다면 지금 한나라당의 ‘공정경쟁’이라는 교육이념을 상대화할 만한 이념을 가지고 있거나, 하다못해 공정경쟁을 한나라당보다 더 힘있게 주장할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이념은 힘이 세다.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이주호 교과부 차관 등이 오랫동안 준비해온 이념과 정책은, 얼핏 보기보다 위력적이다. 다음 칼럼에서는 ‘자율과 경쟁’이라는 정책기조의 한계를 분석하면서, 대안을 구성할 수 있는 출발점을 제안해 보겠다.

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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