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호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홍콩이 난리가 났다. 가난한 사람을 삶의 터전에서 내쫓고 부동산업자만 살찌우는 개발정책을 중단하라는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본토와 연결되는 고속철도 건설에 반대하는 청년들이 표결을 저지하기 위해 의사당으로 향하는 길바닥에 누웠다. 표결이 끝나고서도 봉쇄를 풀지 않아 공무원들이 6시간이나 의사당에 갇혀 있었다. 결국 이들을 해산하기 위해서 최루탄이 발사되었다. 이기적이고 소비적인 줄만 알았던 청년 세대들이 갑자기 가장 보이지 않던 약자들에게 강한 연대를 표시하며 홍콩에서 유례가 없는 강력하고 비타협적인 투쟁을 벌였다. 당황한 것은 정부나 이 계획에 찬성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다. 민주파 의원들도 매한가지다. 도대체 이 도깨비 같은 젊은이들은 어디서 나타난 거야? 누구긴 누구야. 홍콩 사람들이지. 시위에 참가하고 돌아온 친구에게 물었더니 쿨하게 대답한다. 시위에 참석한 청년들의 구성이 너무 다양해서 홍콩 사람이라는 것 말고는 그들이 누구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고 한다. 굳이 다른 공통점을 하나 더 찾으라고 한다면 정당하고는 별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배후도 없고 조직도 없다.
이들은 정말 하늘에서 떨어졌는가? 아니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미 미세한 흐름들이 존재했다. 이들은 2005년 홍콩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담에 반대하는 국제적인 시위와 홍콩의 명물이던 스타페리 선착장이 초대형 쇼핑몰로 재개발되는 것을 보면서 개발과 성장에 의문을 던졌다. 또 삶의 가치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번 고속철도 사업이 발표되자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가르치는 젊은 강사들이 주축이 되어서 학생들과 같이 토론회를 열고 현장탐방을 다녔다. 홍콩의 실체를 알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노력에 화답하여 주민들은 이들을 초대하여 실상을 알리는 작업을 활발히 펼쳤다. 올해 초에는 한 독지가가 기부해서 주민들과 젊은이들이 <아바타>를 집단관람하기도 하였다. 영화평론가들이 ‘미학’적 토론을 하고 있을 때 젊은이들은 이 영화에서 홍콩의 ‘현실’을 읽어냈다.
이 모든 활동들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조직이 중심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교류하는 것이 중심이었다는 것이다. 서로 만나고 격려하고 생각과 비전을 나누었다. 새로운 문제점이나 입법회 의원들의 이권과 같은 감추어져 있던 진실이 폭로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들은 단지 생존만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만남의 핵심에는 가치에 대한 추구가 있다. 시위에 참석한 한 친구는 우린 어른들의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한심하고 멍청한 정책에 신물이 났다고 한다. ‘포스트80’(바링허우)의 젊은이들이 약자와 연대하는 가장 더운 가슴을 가진 정치세력이 되어 자신들을 이기적이고 나약하다고 비난하는 어른들에게 그 언어를 고스란히 돌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정치적 각성과 과격한 등장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교류의 흐름에 있지 않던 ‘바깥’의 사람들에게는 그저 갑작스런 사건이다. 한국의 진보세력은 어떤가? 젊은이들에게 한방 먹은 홍콩의 민주파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20대들이 탈정치화되었다고 간단하게 비난하거나 혹은 88만원 세대론처럼 이들을 생존을 위한 피해자로만 재현하는 데 급급하다. 당사자주의 운운하며 윽박지를 뿐이다. 바깥의 시선이다. 이 시선으로는 그 어떤 흐름도 포착할 수 없으며 아무것도 기획할 수 없다. 어느날 갑자기 정치적 주체가 되어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를 기다릴 뿐이다. 자신의 학생들과 ‘가치’를 토론한 홍콩 대학의 강사들을 보며 나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강의실에서 대학생들과 어떻게 만나고 무엇을 기획하고 있는가?
엄기호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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