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 2.1 연구소 소장
한국 남자들은 드라마를 잘 안 보는 경향이 있다. 특히 지식인과 중장년, 이 집단에 티브이 드라마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지도 모른다. 드라마 볼 시간이 없기도 하지만, 드라마 대신 책을 봐야 왠지 지식인 비슷해 보인다는 그런 생각도 좀 있는 것 같다. 나는 남자치고는 드라마를 많이 보는 편이다. 그냥 보는 정도가 아니라, 질질 짜면서, 출생의 비밀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가슴을 놓고 보는 편이다. 물론 외국 드라마도 본다. <과학수사대>(CSI) 라스베이거스편을 아주 재밌게 보았고, <하우스> 시즌 3을 한동안 넋 놓고 보았었다.
지난해 한국에서 주목받았던 드라마가 몇 가지 있다. 하반기에는 <선덕여왕>이 싹쓸이했고, 한동안 <시티홀>이 지방자치의 묘미를 보여주면서 선방을 했다. 도대체 왜 보는지 나도 이해가 안 가면서도 <사랑은 아무나 하나>를 재방송으로 전편을 다 보았다. 이걸 보고 우는 내가 한심하기도 하지만, 원래 우린 모두 조금씩 한심한 존재들 아닌가?
한국방송작가협회는 매주 드라마 부문에서 시상을 하는데, 지난해에는 수상작이 없었다. 당연히 <선덕여왕>이 수상하리라 생각했는데, 사실 몇 번이나 늘리기를 하면서 드라마 원작이 아주 이상하게 된 것은 사실이고, ‘미실’ 고현정의 연기가 아니었으면 아주 맥빠진 드라마가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수상작이 없었더라도 선정 대상으로 <파트너>가 올라가지 못했던 것은 개인적으로 아주 아쉽게 생각하는 점이다. 이 작품은 시청률로 아주 대박 난 드라마는 아니지만, 15% 정도의 시청률로 기본 방어는 한 정도인데, 공영방송인 한국방송(KBS)의 드라마가 가야 할 길의 전형을 알려준 것으로, 문화사적으로는 아마 중요한 작품이 될 것 같다.
지난해 ‘막장 드라마’라는 말이 유행하였는데, <파트너>는 드물게 법정드라마라는 장르 드라마의 개척자이면서, 아직 일반인에게 생소한 시민참여 배심원제를 우리에게 소개했고, 생태와 환경문제를 에둘러 가지 않고 정면으로 다룬, 어떻게 보면 전위적인 드라마였다. 한국 드라마의 숙제라면, 형식의 실험작을 어떻게 다시 부활시킬 것인가, 그리고 장르 드라마를 통한 공익적 실험을 어떻게 계속할 것인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몫은 공영방송인 한국방송이 일정 정도 맡아주어야 한다. 그래야 계속해서 좋은 작가나 피디가 등장할 수 있고, 배우들도 연기 폭을 넓히게 된다. 자국에 드라마라는 것을 가진 나라가 미국, 일본, 중국, 한국 등 몇 나라 안 된다. 이게 계속해서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필요한 인력이 재생산될 수 있도록 한국방송이 좀 배려를 해주면 좋겠다.
<파트너>는 아직 디브이디 출시가 되지 않았는데, 요즘 사법부에 대해서 국민이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걸 생각하면, 법정드라마라도 법원의 일부를 구경하는 기회로 나쁘지 않을 듯싶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소망한다면, 이 기회에 한국에서도 시즌제 드라마가 등장하는 것이다. 시즌 2를 은근히 기대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팬이기도 하거니와, 드라마라는 편한 창구를 통해서 우리가 한국의 법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더 많이 구경할 기회가 있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오래간만에 봤던 고품격 장르 드라마, 그 명맥이 끊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파트너>가 알려준 진실이 있다. 순간시청률이 법정 장면에서 높게 나왔다는 점인데, 지루하게 이어지는 법률공방을 즐기는 한국 국민이 이 순간만큼은 자랑스러웠다.
우석훈 2.1 연구소 소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