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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기억해야 하는 것들 / 미류

등록 2010-01-31 20:49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기억해야 하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지난해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77일간 공장 점거 파업이 그렇다. 전기도 물도 끊겨 최루액에 젖은 몸도 씻을 수 없었던 그들은 간절히 비를 기다렸다. 경찰특공대원들의 몽둥이질과 고무총탄으로 내쫓겨 밟은 땅에서야 그들은 비를 맞을 수 있었다.

구속된 노동자들의 최후진술을 인터넷에서 우연히 보고 겨우 그 노동자들이 기억났다. 인권침해 감시활동을 위해 다친 사람들을 쫓아 병원을 돌아다녔던 기억이 따라 올라왔다. 옥상에서 떨어져 허리가 부러진 노동자를 만났고 “이렇게 다치고서도 잘못했다는 얘기를 들어야 한다”며 입을 닫는 그의 아내를 만났다. 사흘 동안 30분씩도 잠을 못 잤는데, 자려고 눈을 감고 누우면 동지들이 떠올라 누울 수가 없다는 노동자를 만났다. 그 맞은편 침대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노동자에게 “뒤에서 갑자기 달려온 경찰이 걷어차 넘어진 순간 방패가 손목을 내리쳐 팔이 부러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노동자가 고맙다는 말을 하는데, 끔찍했을 기억을 자꾸만 불러내는 질문을 던지는 내가 고맙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 원망스러웠다.

그토록 바라던 비가 내리던 날, 반가운 가족과 따뜻한 밥 한 끼 나누지 못하고 구속된 사람들, 그들에 대한 선고공판이 오는 12일에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 18일 열린 재판에서 검찰은 지부장에게 징역 7년의 형벌을 내릴 것을 판사에게 요구하고 함께 구속된 간부와 조합원들에 대해서는 징역 2년에서 5년을 요구했다. 이 글은 ‘탄원’의 글이다. ‘사정을 하소연하여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글이다.

노동자들의 최후진술을 들어보라. “막내아들은 어린이집에서 주말에 뭐 했냐고 물어보면 아빠와 놀았다고 거짓말을 한다”는 노동자에게, 감옥 밖의 가족들은 잘 지내고 있다는 거짓말을 누가 할 수 있는가. “해고는 살인이라고 했지만 그 말 많이 쓰지 못했습니다. 입이 보살이라고 5월27일, 6월11일, 7월20일 이렇게 사람이 계속 죽어나가니, 공장이 거대한 죽음의 무덤으로 바뀔까봐 함부로 쓰지 못했습니다.” 이 노동자에게 해고는 살인이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작년 5월에 돌아가신 그 형은 겨울에 내복을 입고 다음해 5월까지 벗지 못했는데, 내가 이렇게 추위 안 타려고 내복을 입고 법정에 선 것이 너무 부끄럽다”는 노동자의 부끄러움을 그의 몫으로 남겨둘 것인가. “동료의 아내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은 날 회사가 ‘오 필승 코리아’를 계속 틀었던 것을 잊지 못한다”는 노동자를 감옥에 가두고 한국 사회가 ‘오 필승 코리아’를 계속 외치도록 내버려둬도 되는가. “지난여름 직간접적으로 고통을 겪은 평택 시민, 협력사, 소방·경찰 공무원과 그 가족, 쌍용자동차 전 사원 및 가족 모두의 아픔들이 빠르게 치유될 수 있도록, 진솔한 마음을 담아 사과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라고 사과하는 그 노동자들이야말로, 한국 사회로부터 사과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탄원한다. 이 ‘하소연’은 재판부가 아니라 우리가 먼저 들어야 한다. 누구도 어찌할 줄 몰랐던 현실을 다만 온몸으로 살아낸 것이 죄라면, 필요한 것은 재판부의 ‘도움’이 아니라 죄를 만들어낸 현실을 바꿀 우리들의 ‘연대’다. 그래서 나는 탄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 몸들의 ‘살아있음’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므로 이제 ‘탄원’은 필요 없다. 해고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현실을, 죽음을 각오하고 바꾸려고 했던 노동자들의 핍박받는 몸이 살아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기억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사람답게 살고 싶은 소망이 죄가 된 모든 사람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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