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 2.1연구소 소장
프랑스에 사회당이라는 정당이 있다. 미테랑이 14년을 집권하였는데, 그 후 시라크에서 사르코지를 거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다. 정책적으로는 사민주의 정도를 표방하지만, 오랫동안 집권을 해서 그런지 덩치도 크고, 크고 작은 부패사건으로 때때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기도 하였다. 좌파 정당도 집권 기간이 오래되면 부패하는데, 그런 사민주의 정당의 부패와 함께 유럽에서는 녹색당이 약진을 하게 될 정치적 조건이 마련된 셈이다.
어쨌든 이런 일반적인 상식으로 본다면,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사민주의 정당을 표명하는 정당은 아직 없는데, 진보신당이 창당하면서 ‘좌파’ 혹은 ‘사민주의’ 정도를 내걸지 못했던 것은 우리의 현실을 보여준다. 한국에는 “당신이 좌파냐?”고 물으면 대체로 3% 정도가 그렇다고 대답을 하고, “당신이 진보냐?”고 물으면 30% 정도가 그렇다고 대답을 한다. 한국의 진보는 국제 기준으로 보면 중도우파 정도의 정책 지형을 갖게 되는데, 집권에 성공한 한나라당은 우파 중에서도 훨씬 더 오른쪽으로 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의 정치 우경화를 선도하는 것은 아무래도 한국 경제의 토건화와 관련이 있을 듯싶다. 지난 3년 동안 정치는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가고 있었는데, 진보 정도를 선택했던 40%가량의 중산층과 중도성향의 표가 한나라당으로 쏠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와중에 최근 새로 약진을 희망하는 정치인들이 내건 정책의 묘한 변화가 눈에 띈다. 친이 계열의 한나라당 본진은 여전히 토건과 신자유주의를 중심에 놓고 있지만, 이들과 경쟁해야 하는 정치인들은 최소한 정책이라는 틀에서 훨씬 더 왼쪽으로 오는 중이다. 서울시장 출마를 준비중인 원희룡 의원은 무상급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친박 진영에서도 ‘복지 한국’이라는 프레임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 사민주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려는 흐름은 실험을 넘어서 일종의 유행처럼 번지는 중이다. 그러다보니 민주당도 놀라서 더 왼쪽으로 오는 중이다. 교육정책을 시작으로 ‘무상’이라는 표현이 늘고 있다. 지난해 선보였던 ‘뉴 민주당’이 우클릭을 한 것이라면, 이번에 나오는 ‘뉴 민주당 플랜’은 좌클릭한 셈이다. 형상만으로 본다면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복지라는 프레임을 들고 나오니까, 줄줄이 왼쪽으로 더 밀려가는 흐름이다. 지난 몇년 동안의 ‘능동적 복지’가 일하는 사람에게만 복지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면, 직업을 구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노동상황에 있지 못한 사람에게도 복지를 제공하겠다는 ‘적극적 복지’ 쪽으로 한나라당의 비주류들이 움직이는 셈이다. 이러다가는 열린우리당의 유전자를 계승한 유시민 전 장관의 국민참여당 정책이 한나라당 비주류보다 더 오른쪽에 가 있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워낙 ‘좌파’라는 딱지를 붙여서 그렇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정규직, 국토개발과 골프장 건설 등의 특징을 가졌던 열린우리당 정책은 보수보다는 우파에 가까웠다.
올해 지방선거에서 2012년 총선과 대선에 이르기까지, 지금의 능동적 복지와 교육개혁의 흐름은 더욱 강화될 것 같다. 원래 지난 대선 때에는 이명박 후보가 중도 정도가 아닐까 싶었는데, 당선 이후 토건 극우 쪽으로 훨씬 더 많이 왔다. 정치는 계속 우경화하지만, 정책은 조금씩 좌경화하는 지금의 형국, 그야말로 시대의 프레임이 변하는 중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신자유주의의 클라이맥스가 확실히 지나기는 지났나 보다.
우석훈 2.1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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