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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왜 열시까지냐고 물어볼까 / 미류

등록 2010-02-28 21:58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난 참 착했다. 문득 돌아보니 그렇다. 중학교까지 통금시간이 밤 아홉시였는데, 잘도 지켰다. 그 시간 이후에 집 밖에서 뭔가를 하려고 생각해보지도 못한 것 같다. 그때 부모님께 왜 아홉시까지 집에 들어와야 하냐고 물어봤다면, 여덟시도 열시도 아니고 아홉시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봤다면, 부모님은 뭐라 대답했을까.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남녀공학이었다. 여학생들은 머리 길이에 제한이 없었지만 남학생들은 한결같이 짧았다. 그때는 남학생들의 머리가 왜 한결같이 짧아야 하는지 의문을 품지 못했다. 그때 선생님께 왜 머리 길이가 귀밑 일 센티미터여야 하냐고 물어봤다면, 십 센티미터는 안 되고 일 센티미터는 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봤다면, 선생님은 뭐라 대답했을까.

얼마 전 한나라당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올라간 개정안의 핵심은 밤 열시부터 새벽 여섯시까지의 집회를 금지하는 것이다.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조진형 의원에게 왜 밤 열시까지만 집회를 할 수 있는 것인지 물어본다면, 아홉시도 열한시도 아니고 열시인 이유는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그는 뭐라 대답할까.

한번 물어보고 싶기도 하지만 그다지 궁금하지는 않다. 이미 질문이 던져진 순간, 기준은 중요하지 않다는 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학생다운 머리’의 기준이나 ‘국민다운 행동’의 기준을 정할 수 있을까. 머리 모양과 의복과 사상과 행동에 제한을 두고 기준을 설정하려는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합리적인 기준 자체가 아니다. 기준을 설정하는 권력이 누구에게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누군가를 통제할 수 있는 자가 권력의 우위에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바로 그 점이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거나 야간집회를 기어코 금지하려는 사람들이 노리는 바의 핵심이다.

질문이 던져진 자리에는 싸움이 있을 뿐이었다.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였던 내가 미처 의문을 품지 못하고 내주고 만 권리는 결국 그 싸움의 한 편을 키웠던 것이다. 내 권리를 저당잡아 권력이 거대해진 만큼 다른 사람의 권리도 손쉽게 빼앗아갔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다시 고등학교로 돌아가더라도 파마를 하고 싶거나 염색을 하고 싶지는 않을 듯하다. 당시 나는 커트 머리가 소원이었다. 얼굴이 커서 안 어울릴 거라는 친구들의 의견에 짓눌려 감히 시도를 못했기 때문이다. 굳이 밤늦은 시각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회를 하고 싶은 경우도 별로 없을 듯하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 없는 이유는, 기준을 설정하는 권력을 더 키워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거나 야간집회를 금지하려는 이들의 주장은 좀 촌스럽다. 이 수준에서 권력의 우위를 확인하려고 아등바등 이런저런 주장을 펼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밤 열시까지로 집회를 제한하지 않으면 밤마다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시끄럽게 할까 걱정하거나,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면 학생들이 너도나도 머리에 염색을 해서 학교가 너무 현란해질까 우려하거나, 사람을 때려야 바른길로 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리 좋게 봐도 수준 낮다. 이런 촌스러운 주장들로 명백한 인권침해가 옹호되는 것은 너무 위험한데 여기 대고 왜 열시까지냐고 물어보는 것은 참 재미없는 일이다. 만약 사람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정부 정책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집단적 의사표현과 행동을 추구할까봐 불안한 거라면, 학생들이 더욱 자신의 권리를 깨닫고 제 길을 주체적으로 찾아나갈까 불안한 거라면, 그 수준으로 가서 싸우면 안 되겠니. 그게 바로 우리가 원하는 것이라 더 물러설 데도 없을뿐더러, 좀 재미있게 싸우고 싶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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