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 교육평론가
우리나라 대입제도를 보면 롤러코스터가 따로 없다. 2004년 참여정부가 내신성적 위주의 대입제도를 발표하자, 교실은 ‘친구를 죽여야 자기가 사는’ 전쟁터가 돼버렸다. 그런데 대학들이 2005년과 2006년에 걸쳐 차례로 논술과 수능 비중을 높이겠다고 맞서면서, 결국 2007년에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이 성립되고 말았다. 2008년에는 대입 자율화를 공약으로 내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3불 논란이 재연되는 와중에 정시전형이 수능 위주로 재편됐다. 2009년에는 고려대 고교등급제 논란이 구렁이 담 넘어가듯 진행되는 한편, 입학사정관제에 본격적으로 드라이브가 걸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러한 우여곡절의 저변에는 2000년대 초반 이래 수시전형을 중심으로 대입제도가 점점 복잡해지고 불투명해진 도도한 흐름이 자리잡고 있다. 선발전형의 종류가 극히 다양할 뿐만 아니라, 도대체 뭘 얼마만큼 하면 합격 가능한지 가늠할 수가 없다. 이처럼 전반적인 복잡화·불투명화의 화룡점정이 바로 입학사정관제이다. 불투명함은 불안감을 조장하고, 복잡함은 정보력을 갈구하게 만든다. 물론 정보력에 있어서도 강남을 정점으로 가파른 기울기가 나타난다. 지방 중소도시쯤 되면 근 10년간 이어져 온 대입제도의 변천에 ‘떡실신’ 상태다. 정운찬 총리가 이 롤러코스터에 현기증 나는 회전구간을 추가하고 있다. 하긴, 3불 폐지와 고교평준화 해체는 정운찬 총리의 오랜 지론이었다. 그의 문제의식 중에는 공감되는 부분도 있다. 아이들을 객관식 시험에 길들여서는 창의적 인재양성에 한계가 있고, 지나치게 복잡해진 대입전형을 간소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영국이나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대입 국가고시를 서술형·논술형으로 바꾸고, 고교 교육과정을 개편해 이와 연계하자고 제안하는 게 논리적이다. 그러나 정운찬 총장, 아니 정운찬 총리는 ‘대학 자율’이라는 금과옥조(?)를 들이대며 일본식 본고사를 지지한다. 이것은 이만저만 위험한 심리가 아니다. 고교 교육과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학 마음대로 해보겠다는 심보, 그리고 명문고와 본고사가 존재하던 시절에 대한 복고적 로망. 참고로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의 실세들이 본고사를 반대하는 것은, 자신들의 대표상품인 입학사정관제를 내세우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본고사가 불러일으킬 불안감과 사교육이 차기 정권 재창출마저 위협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여입학제를 시사하는 데 이르면 어안이 벙벙하다. 전세계에서 사실상 미국의 사립대에서만 볼 수 있는 이 후안무치한 학벌장사를, 왜 가뜩이나 학벌주의로 몸살을 앓는 우리나라에 도입하지 못해 안달인가? 연세대·고려대 총장이 기여입학제의 필요성을 거론한 바 있지만, 재정의 20% 이상을 국민 혈세(국고보조금)에 의존하는 이 대학들이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 맘대로 하겠다’는 걸 지지하는 게 과연 국무총리의 본분인가? 정운찬 총리가 대학총장이 아니라 대권을 꿈꾸는 국무총리라면, 롤러코스터 놀음에서 벗어나 정치적 상상력을 키워보기 바란다. 이제 곧 지방선거인데, 지방 공무원과 공기업 채용 시 해당지역 대학 출신에게 절반의 쿼터를 주자고 제안해 보시라. 그리고 지방 국립대 등록금을 반값으로 낮추자고 제안해 보시라. 서울대 총장 시절에 도입한 지역균형선발과 어울리며, 정치적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형성할 수 있는 좋은 카드다. 물론 조중동은 ‘포퓰리즘’ 운운하겠지만, 이미 한나라당에는 외고 없애자는 사람도 있고 무상급식 하자는 사람도 있다. 이범 교육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